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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앤 트렌드-'도카이 자연보도'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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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라이프 & 트렌드 등록 2005.10.25(화) 제582호


[라이프앤트랜드] ‘도카이 자연보도’에서 배운다

후지산과 에도가 어우러진 총 1697km의 거대한 자연과 문화·역사의 관찰로
단조로운 등산로 탈피한 새로운 개념의 명산탐방, 한국에서도 검토해볼 만

▣ 도카이=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일본은 고도 성장기의 막바지였던 1970년대 중반부터 국민들의 여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등산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산과 자연을 찾는 붐이 조성됐다. 이때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안이 장거리 자연보도다. 장거리 자연보도(Long-Distance Nature Trails)는 일본 전역을 종단이나 횡단, 순환하는 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쉽고 즐겁고 안전하게 지역의 풍부한 자연환경, 자연경관, 역사, 문화 등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관찰로다. 장거리 자연보도의 기본 개념은 산과 자연을 찾을 때 단순한 등산에서 벗어나 자연의 여러 가지 모습을 제대로 구석구석 느끼고 자연과 공존해 살아가는 각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을 탐방하는 것이다.

관동과 관서를 잇는 대표적인 역사루트

일본 환경성이 1970년대 계획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장거리 자연보도는 일부만 국립공원의 소관이고, 대부분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맡고 있다. 일본에는 국립공원을 비롯해 국정공원, 현립공원 등 도시 주변의 주요 등산로가 많이 있고 도심 속에도 녹지공원이 다수 존재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연을 찾고 즐기는 국민적 수요가 계속 이어진다는 판단에 장거리 자연보도를 조성해 관리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자연보도 가운데 자연경관과 문화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이 도카이(東海) 자연보도다. 도쿄도의 다카오 국정공원에서 시작해 오사카부 미노 국립공원에서 끝난다. 총연장 1697km로 도쿄도, 가나가와현, 시즈오카현, 나라현, 교토부, 오사카부 등 총 11개의 광역지자체로 이어진다. 일본의 역사 깊은 고도와 옛길을 아우르는 코스이자, 관동과 관서 지방을 연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역사 루트다. 여기에 생태와 문화까지 접목해 자연관찰로를 조성한 것이다.

특히 시즈오카현 구간은 후지산 자락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아울러 도쿄로 대표되는 일본의 관동지방에서 오사카를 정점으로 하는 관서지방으로 이어진 에도시대의 옛길도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우리로 치면 동해안의 풍광과 영남대로와 호남대로의 문화·역사가 어우러진 것쯤 된다.

도카이 자연보도에서 산지로 이어진 대표적인 곳이 류소잔 코스다. 해발 200m에서 1천m까지 산림·신사유적·산마을을 연결한 코스로, 시즈오카현 시미즈시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코스의 특징은 가끔 날씨가 맑은 날에는 정상부에서 후지산이 한눈에 펼쳐진다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을 오르는 것보다 다양한 풍광으로 감상하는 것을 더 높게 친다. 자연온천이 있는 산마을과 농경지에서 출발해 맑은 계곡물을 따라 오르다가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길이다. 특히 산허리에 자리잡은 호즈미 신사의 수백 년 된 삼나무 숲에서는 경외감마저 감돈다. 단조로운 등산코스가 아닌 산자락의 산촌마을부터 정상을 넘어 반대편 산마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조성했다.

관리의 정성이 탐방가치 만든다

가는 길 사이사이에 적절한 안내판과 쉼터를 만들었다. 등산이나 탐방으로 훼손될 우려가 있는 곳은 나무판을 깔거나 나무다리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복원시설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도모했다. 2천m가 넘는 일본의 산지에서 1천m 남짓 되는 산은 수없이 많다. 이런 평범한 산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리의 손길로 정성을 쏟으니 다양한 탐방의 가치들이 창출된 것이다. 산촌마을부터 계곡을 넘어 신사유적과 작은 원시림이 주렁주렁 하나로 연결되고 마침내 정상에서는 후지산을 조망하는 으뜸의 풍광으로 열린 것이다.

산 정상부뿐만 아니라 호수나 계곡, 협곡도 좋은 자연관찰 코스가 된다. 대표적인 곳이 다누키 호수와 시라이토노타키 폭포다.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후지산 중턱 자락에 펼치진 독특한 풍광으로 우리의 경기도 포천의 산정호수와 제주도 천지연폭포가 약 15km의 자연관찰로에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누키 호수는 후지산 자락의 광대한 아사기리 고원에 자리잡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비교적 작은 호수 축에 든다. 주위 4km의 호수를 따라 자연보도와 쉼터를 조성했다.

자연관찰로뿐만 아니라 야영장과 자전거 도로, 낚시터까지 조성했다. 특히 호수의 물에 비치는 후지산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풍경으로 꼽힌다. 봄은 벚꽃이나 철쭉, 가을은 단풍이 만발한다. 답사팀이 방문했을 때도 인근 대학생들이 야외수업의 일환으로 호수 주변을 산책하고 있었다. 특히 호수 옆에 자연학습원과 휴양림이 조성돼 있어 학교 수업이나 현장체험을 위해 연 수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자연을 청소년의 교육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었다.

역사유적도 도카이 자연보도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구노산 도쇼궁이다.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2대 장군 히데카다가 구노산 산정에 조성한 근엄하고 화려한 신사다. 막부시대의 역사유적에 동해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진 자연보도다. 역사를 음미하며 동해의 시원한 조망을 느끼는 곳이다. 개별화된 역사유적이나 문화재가 인근 마을과 지역의 풍광과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관찰 코스가 된 것이다.

도카이 자연보도의 백미는 무엇보다 일본의 전통적인 거점도시였던 관서지방의 오사카, 교토, 나라 등과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지방을 이어주었던 도카이도를 곳곳에서 복원한 것이다. 옛길을 회복해 자연탐방과 문화탐방을 조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유이마치 코스로, 시즈오카현 이하라군 유이마치 일대다. 이곳 고이케는 에도시대의 도카이도에 있는 옛길의 숙소를 주민자치 차원에서 매입해 새롭게 가꾼 명소다. 이 고이케를 중심으로 현재의 유이마치 일대 마을을 옛길을 그대로 되살려 도카이 자연보도의 코스로 조성한 것이다. 일부 남아 있는 주민들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보존하고 여기에 작은 다리 등 옛 흔적을 조금씩 복원했다. 주말이면 도쿄에서도 신칸센을 타고 와서 이 옛길의 정취를 느끼는 사람들이 사계절 이어진다. 사라져가는 옛길이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우리의 대관령과 한계령, 죽령과 추풍령, 고모령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호수·폭포·전통가옥에 도시인들 매혹

이곳은 특히 등산로가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거점은 물론 한적한 농촌이나 산촌 마을의 평범한 생활공간과 실핏줄처럼 연결돼 있어 도쿄 시민들을 매혹시킨다고 한다. 하나의 거대한 관찰로이자 탐방로인 1697km의 자연보도는 지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개별적인 수십 개의 코스로 분할된다. 지역에서는 각각 10~20km 안팎으로 코스가 나뉜다. 아울러 개별 코스는 각각 생태, 문화, 역사, 지역 탐방 등 각각의 테마와 주제에 맞게 탐방의 줄기와 방향이 설정돼 있다. 그래서 야생 동식물을 비롯해 생태를 깊이 느끼는 코스, 문화유적과 문화재를 느끼는 코스, 역사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는 코스 등 각각의 주제에 맞는 코스가 개발돼 있다.

우리나라도 백두대간의 대관령을 비롯해 미시령, 한계령, 죽령, 문경새재, 추풍령, 차령 등 영·호남에서 수도권으로 연결되는 수많은 길들을 복원해 거기에 의미를 더하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과 연결하는 자연관찰로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로 치면 지역의 유서 깊은 고갯길을 비롯해 산신각, 서낭당이 있는 코스는 물론이고 마을과 논두렁, 밭두렁도 좋은 자연탐방 코스가 될 수 있다.


산자락과 산마을에 숨결을

서민들을 위한 자연탐방로 조성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할때

2000년 이후 국내의 등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견줘 국가나 정부 차원에서 국민들의 여가와 휴식에 대한 요구를 제대로 수렴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니 상당히 낙후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환경성이 2만km에 달하는 자연보도를 조성해 관리한 것을 우리의 건교부에 해당하는 국토교통성이 100만 평 규모의 대규모 자연과 생태,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하는 국영공원을 일본 전역에 10여 곳 조성해 관리하며 질 높은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대도시의 명산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이는 등산로의 관리 실태만 봐도 뚜렷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정책 결정자들인 정치권이나 관료들이 여가나 휴식에서 국민적 눈높이와 유리된 삶의 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이 즐기는 형태의 여가가 아니라 골프를 비롯한 일부 계층에 국한된 여가를 즐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 수립과 예산 집행에서 이런 부문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는다. 문화관광부의 예를 봐도 대규모 관광개발이나 관광단지 조성사업 등 서민들이 즐기고 향유하는 것과 거리가 먼 기반이나 시설 조성에는 수백억원씩 쏟아부으면서 정작 수십만 명이 즐겨 찾는 곳의 투자엔 인색하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대도시의 명산을 비롯해 백두대간의 등산로 등 국민들이 많이 찾는 자연과 산림의 탐방로를 정비·개선하는 사업이다. 아울러 지역에 남아 있는 옛길, 고갯길 등 문화와 역사가 서린 길들을 정비하고 숨결을 불어넣는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백두대간 주능선에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자락의 무수한 지역과 마을에 무궁무진하게 담겨 있는 자연과 문화의 터전으로 국민들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의 숨결이 서린 백두대간의 산마을은 수없이 많다. 아울러 낙동정맥, 호남정맥 등 지역의 중추가 되는 산줄기의 곳곳을 정비하는 사업도 절실하다. 이제 산 정상과 주능선에 맴돌아 자연도 피곤하고 사람들도 피곤한 자연의 길이 아닌 산자락과 산마을의 곳곳을 연결하고 숨결과 활력을 불어넣는 자연탐방로 조성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음 놓고 떠나서 즐길 수 있는 생태·문화·역사의 터전을 염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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