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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티베트

중국서부극지대탐험14-린즈에서 아페이 마을까지

 

곱게 포장된 아스팔트도로를 달려 써지라산(色季拉山, 4730m)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써지라산은 린즈동쪽에 위치하며, 녠첸탕구라(念靑唐古拉) 산맥 동쪽 끝으로,

니양허(尼洋河) 지역과 파이롱짱뿌(俳隆藏布)강 지역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산 고개에는 운해와 끝없이 이어지는 삼림바다의 신비로운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유유자적하다. 멀리 산 밑에는 운무 사이를 뚫고 린즈가 보인다.

 

 

린즈는 원래 원시 산림지대였는데 개발 이후 인근의 빠이(八一)와 함께 신흥공업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니양허의 삼각주 변에 위치한 마을로서 해발이 3,000m가 넘는데

눈부신 만년설산과 나무바다가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린즈를 지나 10여 분 쯤 더 가자 티베트의 현대도시 빠이가 있다.

빠이는 린즈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도시다.

빠이시 중앙에 위치한 샤먼(厦門)광장부터 깔끔하고 시원하게 도시 정비가 되어 있어

과연 이 곳이 티베트 지역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대도시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빠이는 원래 ‘라르가(拉日伽)’라고 하는 조그마한 촌락이었는데 1951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발전하기 시작해 지금의 린즈지역 중심도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인민해방군 창군기념일인 8월1일인 빠이(八一)이 되었다고 한다.

린즈와 함께 신흥공업도시라고는 하나 질서정연하게 정비된 중심도로와 관공서,

길게 늘어선 식당가들 사이로 공업도시라는 느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번듯한 공안국 건물, 지역 군부대 사령부 그리고 한족이 장악한 시내 식당가가

철옹성처럼 구축되어 있어 티베트인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한족,

그들만의 도시라는 인상이 훨씬 강하다.

 

 

라싸로 가는 길에 언제부터인가 동반하게 된 니양허가 에메랄드 빛을 반짝이며 따라오고 있다.

라싸로 가는 길에 마지막 고개인 미라쉐산(米拉雪山, 해발 4900m)에서 발원한 니양허는

얄룽창포강의 5대 지류 중 하나.

맑고 푸른 니양허와 물가에 선 백양나무 단풍의 조화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이동하는

탐험대의 피곤함을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하고 있다.

 

 

 이 니양허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을이 있다. 바로 니양허를 젖줄 삼아

자리한 콩포기얌다(工布江達)현이다. 이 마을이 주목 받는 것은 티베트에서 유명한

귀족가문인 ‘아페이, 아왕진메이(阿沛,阿旺晋美)’의 고향인 까닭도 있다.

아페이는 중국이 침략하기 전 이 지역의 영주였다.

 

 

그러나 티베트가 중국의 속국이 되면서 중국중앙위원회의 위원이 되어 입신하는 등

티베트인 출신 중에서 가장 성공한 대표적 인사가 됐다.

현재도 92세로 생존해 있으나 북경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아페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동네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이 지역에 수력발전소와 다리를 놓아 주어

고맙게 생각한다.’고 한다.

좀 짓궂게 예전 아페이 영주시절과 비교해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한참을 망설이던 동네 처녀가 “해방 전까지만 해도 이 일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걸이에

족쇄까지 한 노예 신분이었는데 해방 후 그런 것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말 속에 숨은 뜻인 무엇인지 곱씹어 본다.

어쩜 이들은 중국이니 티베트니 하는 국가개념보다도 누가 인민들에게 잘 해주느냐가

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 티베트의 젊은 처녀는, 중국이 티베트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전혀 거리낌 없이 쓰고 있었다.

 

 

하긴 아페이 마을은 우리 탐험대가 지나 온 수 백km에 이르는 동부 티베트 지역의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마을이었다.

이 두메산골의 조그마한 마을에는 왠지 낯 선 듯한 빌라식 건물과 마을회관,

그리고 포장도로. 어쩜 아페이는 고향에 진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탐험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미라쉐산(米拉雪山)을 오른다. 천장공로 중 마지막 산고개다.

산고개를 넘어 150km정도 더 가면 라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