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큐멘터리란 2.사실과 허구 3.초기의 다큐멘터리 4.다큐멘터리의 재정립
5. 다큐멘터리 영상제 감상작 6.감상작 내용 및
소감
7.에필로그
1. 다큐멘터리란 안용준(http://kimo.pe.kr) 1895년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최초로 탄생된 영화는 20세기로 넘어 오면서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독자적인 개성과 형식을 갖춘 새로운 예술로 발전하게 되었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20년대로 접어들면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었는데 이것이 다큐멘터리이다. 다큐멘터리가 픽션과 다른점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꾸며진 세계가 아닌 현실을 소재로 작가의 시각을 통해 형성되는 예술형식이라는 것이다. 즉 허구가 아닌 실재하는 사람, 행동, 장소 그리고 사건속에 담겨진 가치를 탐구하여 영상언어로 전달하는 진실의 형상화 작업인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예술적인 거짓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빙성있는 사실들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하려고 한다. 이런 진실성이야 말로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며 또한 논쟁의 근원일 것이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 어떤 사건이나 문화현상의 실제적 모습과 가치등을 예술적 형식으로 묘사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1920년대 초반을 출발하여 1940년대 텔레비젼 탄생을 시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갖춘 색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으로 성장해온 다큐멘터리를 사전적으로 정의한 것이다. 세계최초의 다큐멘터리는 1922년 로버트 플레허티( Robert Flaherty )가 만든 북극의 나누크 ( Nanook of North )이며, 그당시 플레허티가 미지의 원시 사회인 분리된 북극을 카메라에 담은 의도는 에스키모인들이 생존을 위해서 척박한 북극의 자연환경과 싸우는 그들의 특이한 생활보습을 편안한 생활만을 추구하던 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충동에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그러한 목적달성을 위해 새로운 제작방법과 형식으로 작품을 완셩하였는데, 이것이 다큐멘터리 제작방법의 최초의 형태로써 다큐멘터리의 효시라고 할수있을것이다. 그는 나누크의 성공이후 나누크와 비슷한 주제와 형식, 접근방법으로 아름다운 남태평양 섬을 배경으로 폴리네시안 원주민을 주인공으로하여 그의 두번째 작품인 Moana를 발표하였다. 존 그리어스( John Grierson )는 이 작품을 보고 “ Moana는 자료로써 기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라는 내용의 글을 New York Sun지에 기고하였는데 이 글에서 다큐멘터리라는 용어가 최초로 사용되었다. “ Documentary ”라틴어에서 유래한 document가 어원으로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르면 documentary라는 용어는 교육( a lesson ), 훈계( an admonition ), 경고( a warning )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어슨이“ Moana ”기록자료로써 가치가 있다고 썼을 때 그는 단순한 풍경이나 기행영화와 진정한 의미의 기록영화와 상이한오늘날의 document - 사실적이고 근거가 있는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 Documentary ” 사용했을것이다. 미국의 작가 바섬( Richard barsam )은 “ Documentary ”대신해서 이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 Non - Ficti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이것을 다시 “ Documentary ” 사실영화( Factual Film )로 나누고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는 관객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사실과 의견을 토대로 만드는 영화이고, 사실영화는 단순히 사실만을 전달할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의 다큐멘터리 학자들은 오늘날과 같이 사회적, 정치적 요인들과 함께 기술적 미학적 요소들이 혼재해 있는 상황에서 다큐멘터리의 범주를 규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으며, 더구나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다큐멘터리를 현시점에서 단정적으로 정의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가 어렵고 학자마다 다른 것은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점점 더 불투명해져가고 있으며 개념은 희미해져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에는 다큐멘터리가 작품의 형식, 기능, 목적에 따라 프로 파간다 다큐멘터리, 서정 다큐멘터리, 실험 다큐멘터리, 교육 다큐멘터리, 서사 다큐멘터리, 자연 다큐멘터리, 보도 다큐멘터리, 특집 다큐멘터리 등으로 다양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용어들의 의미로 부터 어떤 개념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그 단어 자체에 어떤 정의가 존재하리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가 일치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할수있다. 이러한 문제는 모든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여 합의된 정의가 아니라 관습에 따른 무언의 정의에 가깝다고 할수 있을것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는 명확한 실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다큐멘터리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정의내리고자하는 열망과 관념의 표현이라 할수 있을것이며, 결과적으로 다큐멘터리는 “ Documentary ”용어자체의 의미를 찾기위한 인간의 노력의 역사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다큐멘터리를 정의할수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언급, 즉 역사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발전되어 왔고 또 앞으로 어떠할 것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일 뿐, 현재의 다큐멘터리란 이런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지 못할것이다.
픽션의 주제가 개인적인 활동과 인간관계를 포함한 보편적 인간조건을 다루는 것에 반해 , 다큐멘터리는 주로 특별하고 사실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다큐멘터리 작품속에 나타나는 인물, 사건, 현장등은 현실적인 것이며 일반적으로 일반적으로 동시대의 것이다. 대부분의 픽션이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인과성이 결여된 비서술적 방식에 의해 주제중심으로 구성되는 경향을 보이며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하나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하나의 문제나 논점을 표현하는데 관심이있다. 다큐멘터리는 이해나 논리에 지장을 주지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롭게 shot과 scene을 연결해 발전시킬수있는, 즉 소재의 구성과 배열에 자유로우며, 때로는 극적갈등이 없고 주어진 상황만 있는 다큐멘터리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기, 승, 전, 결의 전개방식이 필요하지 않다. 픽션은 다큐멘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락적 기능이나 미학적 경험을 중요시 하는 반면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공정성에 기초를 두어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기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의 주제 전달 방법으로 직접적이고 해설적인 논술이나 설명의 방식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은 관객들이 별부담없이 영화를 보고 감각적인 면에서 미적인 체험을 하거나 관객들에게 가치관과 태도에 변화를 주어 행동을 유발시킬수 있는 경험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작품속에서의 미적요소란 픽션과 비교해볼때 매우 빈약하며 기능적이어서 제작자는 개성있는 스타일보다는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극영화에서 진실성이란 허구의 상황과 등장인물들의 내적인 가치와 의미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진실을 말하는 반면, 다큐멘터리에서는 현실의 실재적인 요소를 통하여 도달하는 사실적인 진실을 의미한다. 테크닉 보다는 작품의 주제가 우선되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현실세계를 가능한 손상시키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그대로 표현 하려는 제작태도 때문에 간혹 “창조의 예술”이 아니라 “존재의 예술”로 불리가도 한다.
플레허티는 다큐멘터리를 “ 발견과 폭로의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일종의 탐사다.”라고 정의한 반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 사실적인 것의 창조적 해석 “이라고 규정하였다.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의 소재, 주제를 현실속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소재를 선택해서 처리하는 방법에는 차이를 보였다. 플레허티는 제작의 중요성을 현상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카메라의 활동과 잠재력으로 보고, 가능한 오랫동안 관찰하고 많이 촬영하여 사실성을 높이는데 노력하였으며, 편집의 왜곡을 의심한 그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정보와 공간의 연관관계를 가장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Scene을 길게 잡는 long takes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편집은 2차적인 행위로 보고 가능한 절재하였다. 이와는 달리 그리어슨은 편집을 촬영 못지않게 중요한 창조적인 작업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의해 촬영된 필름일지라도 작품제작에 도움이 된다면 편집과정에서 사용할수있다고 함으로써 플레허티와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는 여기에서 이미, 작품제작에서 어떤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것인가 하는 관점에 따라 촬영자와 편집자 , 다시말해 플레허티와 그리어슨간의 구별이 생긴다. 이러한 점은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에 관해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논쟁들 - 객관성과 주관성 - 사실과 픽션의 개념정리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다큐멘터리가 사실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는데 작가의 의도와 가치관이 얼마만큼 개입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논란의 대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플레허티가 사실을 발견하여 전달하는 것만으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한계지었다면, 그리어슨은 있는사실을 토대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여 선전이나 교육과 같은 목적으로 실현시키는 도구로 이용함으로써 다큐멘터리의 폭을 넓혔다고 할수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커뮤니케이션 기구로 자리잡은 텔레비젼은 현대 문명과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지구촌 구성원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쳐 인간사회를 지배한다고까지 한다. 이러한 텔레비젼의 등장으로 다큐멘터리는 100여사를 통해 가장 큰 변혁을 맞이하였다. 텔레비젼은 크게 오락적 기능과 커뮤니케이션 기능 두 가지로 나눌수 있으며, 후자의 기능으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자극하며 인류에게 다양한 삶의 경험과 현대문명의 진로에 영향을 미친 사건과 이슈를 가져다주었는데, 텔레비젼의 여러 프로그램들 중에서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면에서 가장 진지하고 유효적절하게 그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과거 체계적인 예술 형태를 취해온 이전의 다큐멘터리는 텔레비젼의 등장으로 “많은 관객”과 “재원”을 탄생시켜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성장과 영역을 확대시켜왔으며 창조적, 기술적인 면에서도 다큐멘터리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 텔레비젼이 다큐멘터리 양식을 탄생시켰다고 할수는 없으나 다큐멘터리 양식을 부활시켰다고 말할수있을것이다. 결과적으로 텔레비젼의 등장은 하나의 새로운 틀을 형성케 했고 창의성과 기술적측면에서 다큐멘터리를 실재적으로 발전시켜왔다.
⑴ Nanook of North / 1922 감독 / 로버트 플레허티 ⑵ Drifters ( 유먕선 ) 감독 / 존 그리어슨 ⑶ Housing Problem ( 주택문제 ) 감독 / 에드가 안스티, 아서 엘튼 ⑷ Hanoi 13th Tuesday ( 하노이 분노의 13일의 화요일 ) / 1967년 감독 / 산티아고 알바레즈 ⑸ Now ( 지금 ) / 1965년 감독 / 산티아고 알바레즈 ⑹ Bophana, The Cambodian tradegy ( 비극의 캄보디아 여인, 보파나 ) 감독 / 리치 판 ⑺ The Mother of the Plaza de Mayo ( 5월 광장의 어머니들 ) 감독 / 루드르 포르칠로, 수잔나 무노즈 ⑻ Love, Women and Flowers ( 사랑, 여성 그리고 꽃 ) 감독 / 조루즈 실바, 마르타 로드리게즈 ⑼ Prediction of Fire ( 포화 예감 ) / 1995년 감독 / 마이클 벤슨
⑴ Nanook of North ( 북극의 나누크 ) / 1922 감독 / 로버트 플레허티 다큐멘터리의 효시라 불리우는 로버트 플레허터의 Nanook of North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북극의 추위와 황량함에 맞서 싸우는 나눅이라는 사냥꾼과 그 가족의 여러가지 생활상을 토대로 자연스럽게 묘사한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의 시초라고하는 것은 그의 제작방법과 형식이 당시의 일반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며, 또한 극영화 이상의 상업적 흥행에까지 성공합으로써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한 흥미도 고조시켰기때문이다. 1884년 미 북부 미시간주 아이언 마운틴지방에서 태어난 플레허티는 광산기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 캐나다등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26살이 되던해인 1910년 그는 캐나다 철도건설업자인 윌리엄 매킨지( William Mackenzie )경을 만나게 됨으로써 광산기사겸 탐험가로써 첫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번의 탐사 원정에서 플레허티는 벨처 ( Belcher )를 발견하게되고 여러가지 목재와 광물을 발견, 탐사하는 탐헙가로써 명성을 떨치게 된다. 1913년 윌리엄 경은 자신이 가지고 돌아온 사진자료들을 완성시키기위해 플레허티에게 이상한 사람과 동물이 살고 있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곳을 촬영하도록 부탁을 한다. 이러한 요청을 받은 그는 뉴욕주 로체스터에 있는 학교에서 3주동안 필름에 대한 기본 교육을 받고 카메라, 현상인화기등 장비를 가지고 그의 세번째 원정길을 떠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에스키모의 환경과 여러가지 생활상등을 약 70,000피트 ( 약 12시간 분량 )길이의 필름으로 촬영해 돌아온다. 토론토에 돌아와 결혼을 한후 그의 부인 프랜시스와 편집을 하고 있던 어느날, 담배불이 테이블 및에 떨어져 바닥에 쌓여 있던 필름더미에 인화됨으로써 순식간에 원필름 30,000피트를 불태우게되며 그 또한 심한 화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이런 뼈아픈 실수를 한 플레허티는 1920년 모피회사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고 다시 북쪽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는 16개월동안 에스키모의 이티비뮤이트족의 사냥꾼 나눅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이렇게 해서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인 “ Nanook of North “가 1922년 탄생하게되었다. 이 작품이 완성된 42년후인 1964년 만하임영화제에서 세계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자들이 “ Nanook of North “을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선정함으로써 다큐멘터리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함과 동시에 그 전통을 세우는 데 확고한 초석을 이루었다. “ Nanook of North ”자막, 음악, 그리고 이미지로 작품이 구성된 사이런트 필름이다. 이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지는데 전반부는 좀 더 따뜻하고 경쾌하며 평화로운 정경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여름장면들이고, 후반부는 황량한 벌판에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식량을 찾아 짐승들을 사냥하는 장면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의 모험, 기행영화와는 달리 스크린 속의 에스키모들의 생활은 관객들에게 이상하게나 특이한 모습이아니었다. 영화속에서 그들은 일상의 생활을 하고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인 나눅은 유쾌한 혹은 위험스러운 사건후에 가끔 친구처럼 관객을 향해웃는다. 바로 이런 웃음들이 괸객들로 하여금 에스키모의 생활 속에 파고들게 했던것이다. 담담하게 담은 플레허티의 영상은 오히려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 에스키모의 삶 “이란 주제를 성공적으로 끌어낸것이였다.
⑵ Drifters ( 유먕선 )
감독 / 존 그리어슨 그리어슨은 영국의 교육적 다큐멘터리를 주도한 감독으로 목적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주장하였다. 플레허티가 있는 그대로의 이국적인 삶속에서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였다면 그리어슨은 가까운 자신 주변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인 문제를 재해석하여 사회발전의 계기로 삶고자 했다. 그는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서 진실을 보여주고 정치적, 경제적 횡포에 대항하는 참여로써의 영화를 보여주고있다. 그의 처녀작인 유망선은 북해에서 청어잡이를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촬영한 영화로 당시 영국국민들의 단력과 발전의지를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 클래식다큐멘터리중에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Nanook of North ”보지못하고 그리어슨 감독의 “ 유망선 ”을 보았다. 책에서만 접할수있었던 초기의 다큐멘터리를 직접보고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다. 대사나 나레이션이 없이 흐르는 흑백의 화면속에서 무언의 메세지를 느깔수있었며 다큐멘터리의 시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화질이 많이 떨어졌고 audio도없었지만 오늘날의 다큐멘터리에서 볼수없었던 강한 느낌을 받을수 있었으며, 플레허티의 작품보다 전개와 시사하는 내용등에서 플레허티의 작품이 보다 현대적으로 느껴졌으며, 개인적으로 현대의 다큐멘터리보다 더 좋았다.
⑶ Housing Problem ( 주택문제 )
감독 / 에드가 안스티, 아서 엘튼 “주택 문제 “는 현실의 창조적 해석 이라는 개념을 세운 그리어슨은 이후, 교육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편집을 통해 의미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주택문제 “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이 영화는 그리어슨의 노력으로 민간의 후원을 얻어 만든 영화로 런던 동쪽 빈민지역의 여러문제점들을 다룬 연작들 - “ 주택문제 “, “ 먹기에 충분한가 “, “ 공해의 위협 “, “ 학교의 어린이들 “- 중의 한편이다. 이 영화들은 르뽀와 토론 형식으로 해설과 합께 사용함으로써 내용의 일관성과 함께 메세지를 강조하고있다. 이러한 영화들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시사적이어서 순수성은 떨어지지만 내용면에서 일정한 형식과 기술적 혁신이라고 할수있는 직접인터뷰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유머와 고발성의 요소는 충격적인 요소로써 받아들여진다. 이 영화에서의 빈민의 인터뷰와 해설자의 나레이션에 이은 주택관계자의 인터뷰는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진행방식이지만은 당시에는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 쌍방의 의견을 들어보고 분석자료를 통하여 개선책을 제시하는 이 영화의 진행방식을 보고 영화를 볼 당시에는 잘 못느꼈지만 돌아와서 자료들을 보면서 얼마나 앞선 영화였던가를 실감했으며, 영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흑백의 화면만으로 소름이 끼칠정도의 음산한 분위기을 전달한 제작자의 영상표현력에 놀라웠다.
⑷ Hanoi 13th Tuesday ( 하노이 분노의 13일의 화요일 ) / 1967년
감독 / 산티아고 알바레즈 월남전을 객관적으로 담은 ”하노이 분노의 13일의 화요일”은 미국의 무차별적인 하노이 대공습을 다룬의 알바레즈의 대표작으로그는 쿠바의 세계적 다큐멘터리 감독이다.지금까지 90여편을 제작한 반제국주의와 반외세라는 일관된 주제와 현대적 감각의 배경음악,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빠른 템포,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을 차용한 독특한 편집으로 다큐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거장이다. 베트남 혁명영웅 호치민을 다룬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미국산 록큰롤을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59년 쿠바혁명과 더불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쿠바혁명과 베트남전쟁,캄보디아와 라오스의 내전,칠레의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반제.반외세를주제로 한 기록영화 촬영에 일생을 바쳐온 제3세계 다큐멘터리의 산 역사이다. 베트남전쟁기간중 산티아고 알바레스는“하노이 분노의 13일의 화요일”의 촬영에서 촬영이 무척 힘들었고 “하노이 분노의13일의 화요일”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그는 “베트남에 도착한 이튿날이 13일의화요일이었습니다. 미군이 전폭기 2백여대로 하노이를 폭격했지요. 16㎜카메라로 고난에 빠진 월남인들을 사실적으로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밝혔다.녹음기도 없이, 16㎜ 카메라와 소련에서 빌린 조명기 하나만 들고 북폭 전야의 하노이로 달려가던 그는 “기자재 부족을 탓하는 요즘 젊은 감독들”을 이해할 수 없는, 혁명 1세대다. “그것은 그들 나라 내부의 문제다. 우리는 1868년 호세 마르티의 대 스페인 독립투쟁에서 시작된 길로계속 걸어가겠다. 더 좋은 세계가, 더 좋은 미래가 나타날 때까지 사회주의로 나간다는 것이다.”라고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에 관한 논평을 하고있다그는 자신의 영화를 `긴급영화’라고 불렀다. 그에게 영화는 세계의 변화에 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긴급제언이었다. 그는 올해 안에 그동안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는 기록영화를 만들 셈이라는데, 등장인물의 면면을 보면 사회주의 쿠바라는 20세기 후반의 진지에서 그가 해온 작업의 역사를 알 수 있다. 호치민, 체 게바라, 빅토르 하라, 살바도르 아옌데….
⑸ Now ( 지금 ) / 1965년
감독 / 산티아고 알바레즈 독재권력과 제국주의의 폭력과 업악은 전투적인 사회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하여 비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라틴 아메리카 다큐멘터리의 대표작으로 반제국주의와 반외세라는 주제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산티아고 알바레즈의 영화로 그는 영화속에서 감동을 동반한 이성을 중요시하여왔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long takes기법과는 상이한 스틸사진과 강열한 음악만으로 강열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빠른 템포의 편집을 사용하였다. 1965년에 발표한 “ Now ”레나 혼이 부른 6분 짜리 노래 “ Now ” 하고 같은 길이의 뉴스릴을 제작한 것이다. 알바레즈가 미국에서 경험한 인종차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소재로하고 있다. -마치 경쾌한 한편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이 작품이 다큐멘타리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영화속에서 시사하는 바는 크게 느껴졌으며 한편으로 막연했던 다큐멘터리의 벽을 허물어 주는 작품이었다. 주장하는 목소리가 너무가 강열하고 명쾌했으며, 내용의 난이도가 쉬워 대중적으로 보였다. 다큐만 고집하며 살아온 알바레즈는 다큐와 극영화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쉽게 설명했다. “극영화에는 화장이 있지만 다큐에는 없습니다. 다큐의 주인공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다큐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을 느끼고 담는것입니다.” 그는 또 다큐멘터리의 다양성에 대해서 우리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사회적 지원이 없고 실험성이나 예술성을 살리는 등 다양한 스타일의 다큐멘터리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필름 제작, 형식파괴 등으로 질을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나 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내년쯤 혁명기를 소재로 한 필름 다큐를 제작,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후년 쯤에는 극장용 다큐터리 제작에 착수하려는 계획도 이런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한다그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최고의 프로젝트는 ‘세계영화기행’을 필두로 한 ‘20세기 시리즈’ 다큐멘터리다. 99년에 완결편을 내놓을 이 다큐멘터리는 20세기의 문화, 과학, 전쟁, 사상 등 각 분야의 정리를 통해 20세기를 총정리하고 궁극적으로 ‘한세기의 이데올로기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답을 끌어내려는 대작이다. 이처럼 멀리 생각하고 길게 보는 법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때 신명을 느끼는 것처럼 그가 타고난 연출자로서의 끼일것이다.
⑹ Bophana, The Cambodian tradegy ( 비극의 캄보디아 여인, 보파나 )
감독 / 리치 판 캄보디아의 부패한 정치를 역겨워하던 리 시타가 공산당 저항파에 가담한후 아내 보파나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체포되어 고문당하고 처형되기까지 불운한 한부부를 통해 시대적 아픔을 그린 다큐멘터리. -캄보디아의 고난의 역사길을 같이 걸어온 한 부부를 통해 동 시대의 캄보디아 인들이 겪은 역사를 재조명하는 이 작품에서 철저한 사전 자료 ( 부부간에 오갔던 편지, 일기장 ) 와 주위의 정확한 고증등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였던 작품이다. 어둡지만 어색하지않은 인터뷰들이 사실감과 강한 힘을 내포하는 것같았고 충분한 사전준비와 다큐멘터리에서의 회상방식( 재현의 형식이 아닌 나레이션은 과거를 회상하며 영상은 과거를 상징할만한 집, 사진, 글, 그림등을 보여주었다. )이 인상적이었다.
⑺ The Mother of the Plaza de Mayo ( 5월 광장의 어머니들 )
감독 / 루드르 포르칠로, 수잔나 무노즈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맞서, 77년 4월부터 죽음을 무릅쓰고 실종자 석방과 진상규명을 요구한 어머니들의 숭고한 의지를 담은 적품으로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을 뚜렷이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작품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농후하게 내포하고 있다. - 이 영화를 보고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자식을 향한 어머니들의 끝없는 사랑과 사랑을 잃어버린 그들의 아픔이었다. 상당히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 했으며 기득권층을 향한 민중의 소리를 실종된 자식을 찾기 바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대변된듯했다. 이 다큐멘터리와 1980년대 광주 민주항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매우 흡사하다고 느껴졌다.
⑻ Love, Women and Flowers ( 사랑, 여성 그리고 꽃 )
감독 / 조루즈 실바, 마르타 로드리게즈 콜럼비아의 3번째 큰 수출품인 꽃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유럽 등지로 판메되는 카네이션과 국화의 아름다움뒤에 숨어있는 화훼산업의 위험성, 노동집약산업의 노동착취와 사회적 우월주위에 대한 사회고발성 작픔.- 일반적인 이미지의 꽃뒤에 숨어있는 무서운 노동현실과 가부장적 사회에서 겪는 여성의 고통을 고발하는 이 작품을 보고 다큐멘터리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통감할수 있었으며 꽃과 비유될만한 여성의 뒤에 위험한 노동 현실, 남성우월주의, 빈곤층의 아픔들을 표현한 작가의 의도가 평범해 보이는듯 하지만 놀라웠다. 아이템이 선정이 특이했었고, 제작자의 주장을 나타내는 전개방식이 인상적이었다.
⑼ Prediction of Fire ( 포화 예감 ) / 1995년
감독 / 마이클 벤슨 1980년대초 슬로베니아의 인더스트리얼 록 그룹 라이바흐가 파시스트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파문을 일으킨뒤 파격적인 예술집단으로 결성되어 그들만의 독립국을 선포한 이슈를 소재로 만든 작품- 그들의 문화와 전통에 대해 아는 사진지식이 없어서 작품의 내용과 주장하고자 하는바를 정확하게 이해할수는 없었지만 형식과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이었으며 영상도 충격적이었다. 예술, 정치, 종교, 역사등 다방면과 연계되어 진행된 이 작품의 내용은 전통적사고를 가져온 나에게 충격과 한편으로 시각의 새로움이라는 신선함까지 주었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고 추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시각으로도 볼수있고 그러한 방법으로도 표현할수 있다는것이 고정관념을 깨어주는 작품이었다.
강의와 책으로만 접하던 초기의 다큐멘터리에서 현대의 다큐멘터리까지, 시대를 대표할수있는 8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난 뒤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파악할수 있었던것같다. 자연과 삶에 관심을 가지고 현실에 최대한 접근을 시도했던 플레허티와 목적을 가진 다큐멘터리를 주장한 그리어슨, 그리고 과도기적인 작품과 현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미래의 다큐멘터리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모든 분야에서 그 분야의 정의와 시초에 대해 강조하며 관심을 가지고 학습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분야도 많지 않을것이라 생각되며 다큐멘터리만큼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대중의 삶에, 의식에 영향을 가져다준 분야 역시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어감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 지고 세분화되어지고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공부하는 학생입장에서 초기의 다큐멘터리가 현대의 다큐멘터리의 기본 바탕, 기본 의식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오히려 더 큰 감동을 가져다 주었다. 초기 다큐멘터리 이후, 당시 사회에서 공론화되거나 공론화 될만한 아이템이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어 대중의 사상을 이끌고 갔다면 현대의 다큐멘터리는 세분화된 소재를 바탕으로 시청자가 공감하여 주기를 원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같다. “Nanook of North “와 “유망선”에서 아이템의 선정과 접근방식이 상이하듯이 “사랑, 여성 그리고 꽃”과 “ 5월 광장의 어머니들” 역시 아이템의 성격과 내용상의 전개방식이 많이 다름을 느낄수있다.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로써 구성상의 완성도는 “사랑, 여성 그리고 꽃”이 훨씬 더 높게 느껴지며, 구성상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아이템의 선정에서는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된다. 모든 프로그램에서 아이템, 소재의 선택이 중요한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다큐멘터리만큼 아이템의 선정이 중요한 프로그램도 없을 듯 싶다. 감상했던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다큐멘터리였던 “ Prediction of Fire 年 내용을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난해했지만 현대의 다큐멘터리를 이해하는데에는 큰 도움을 주었으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해주었다. 흔히 다큐멘터리는 구성만 있지 콘티는 없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기획단계에서 아이템의 선정이 중요하듯이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맨의 역할과 자질이 어떠한 프로그렘보다도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능력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것이며 기획자를 능가하는 시각과 풍부한 사전준비와 지식, 기획력이 있어야 좋은, 뛰어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수있는 카메맨이 될수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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