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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개론

다큐멘터리란? |

 

다큐멘터리의 이데올로기성에 있어서 영상의 역할

TV가 지니는 가장 큰 강점은 TV화면이 지니는 현실성, 즉 사실적 모습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강점은 각종 방송기법(영상, 음향, 음성 등에 대한)에 의해 심 지어는 현실인 것으로 착각하도록 만든다. 더군다나 다큐멘터리의 경우 현실세계 를 촬영한 화면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수용자들에게 그것의 사실성이 더욱 강 력하게 소구 된다.

최근들어 TV에서 다큐멘터리물이 양산된다 할 정도로 많아지고 있으며, 나름대로 대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제작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강점이 작용하여 수용자에 게 호소력을 지니게 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물이라 하더라 도 실제 제작에있어서 화면의 구성과 이롸 관련된 소리의 조합은 결국 그것이 반드 시 사실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영상화한 화면이 총 체적인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한에 있어서는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강조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는 전술한 대로 주로 현실세계를 영상화 하거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기 때문에 그것의 사실적 효과는 더욱 커진다. 여기서 다큐멘터리 의 이데롤로기적 기능이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실제 제작에도 참여했던 정통 다큐 멘터리 이론가들의 정의에서도 이미 그 싹을 찾아볼 수 있다.

 

1. 다큐멘터리의 정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가 학자들마다 차이를 나타내는 것은, 정의를 내리는 사람 들의 관점의 차이나 그만큼 다큐멘터리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정의들에는 다큐멘터리의 형식, 기능, 목적 등에대한 관점의 차이와 실제로 이러한 측면을 지닌 다큐멘터리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몇몇 다큐멘터리 이론가들의 정의를 간단히 고찰할 필요가 있다. Ellis는 대표적인 이론가 인 플레허티 Robort Flaherty와 그리어슨 John Grierson ,그리고 로다 Paul Rotha 의 정의가 가지는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를 현실세계에 대한 탐구와 폭로(revelation)를 위한 영화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 그리어슨은 실제 즉, 실제세계의 '창조적 처리(treatment)' 로 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둘다 기본적으로 실제세계를 다큐멘터리의 주제 또는 기반으로서 삼는 것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 둘은 실제세계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기술, 즉 자료의 처리기술의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플래허티와는 달리 그리어슨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촬영된 자료필름의 삽입을 허용하고 있으며, 이는 편집이라는 과정을 인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이는 기본적으로 플레허티와는 달리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가 (사회민주 주의의)선전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데서 발생한다.
플래허티가 있는 사실을 발견하여 전달하는 것 만으로 다큐멘터리의 의미를 한계지우고 있다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있는 사실을 전달하여 일정한 목적을 위한 선전의 도구로 서 사용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로다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그리어슨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지만, 더 나아가서 다큐멘터리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창조적으로 그리 고 사회적 견지에서 해석하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로다의 이러한 입장은 다큐 멘터리의 소재를 실재하고 있는 세계에만 한정 시키지는 않는 것으로, 사회가 조금 더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스튜디 오에서 배우를 사용한 다큐멘터리의 제작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1)

로다의 이러한 정의는 결국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다큐드라마의 현실적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는 현실 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세계를 필름에 옮겨 담은 것을 의미하며, 다큐드라마의 경우 에도 그것이 극화한 소재는 현실세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본질적 인 동질성을 지닌다. 단지 소리와 영상의 조작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정도에서 차이 를 지니는 것 뿐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세계 최초로 개최 된 다큐멘터리 연맹에서 제시된 다음과 같은 진술이 가장 포괄적으로 다큐멘터리 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폴로다 저,유현목 역, 1982, 30면)

"다큐멘터리 영화란 경제, 문화, 인간관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과 이해를 넓히고 그 욕구를 자극시키며 문제와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성이나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서 사실의 촬영이나 진지 하고 이치에 맞는 재구성을 통해 해석되는 사실의 모든 면을 영화(Cellu loid)에 기록하는 모든 방법을 말한다."

결국 정의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다큐멘터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1차적으로 고려 되는 것은 '사실'과 '재구성'의 문제이다. 부연하자면 먼저 다큐멘터리가 다른 문화 양식과 구별되는 것은 그 소재가 '실제세계(actuality)' 라는 점 때문이며, 두 번째 로 그것이 규명한 화면을 통해 제공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재구성'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서 이미 실제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점이다.

 

2. 사실성의 문제

다큐멘터리의 본질적인 측면이 지니는 문제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세계를 다루고 있는 '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의 문제이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세계를 그 소 재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촬영한 현실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한 계를 지닌다. 재구성이라는 것은 사실의 단편들을 새롭게 짜맞추는 것이며, 따라 서 이를 어떻게 짜 맞추는 가에 따라 역사적 사실들의 의미는 새롭게 주어질 수 있 는 것이다.(2)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설득력의 원천은 다큐멘터리가 타 예술 매체에 비해 현실과 맺는 특권적 관계(실제의 재현정도가 높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 다고 주장 된다. 이에대해 니콜스 Bill Nicols 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편다.

"사람(관객)들은 첫 번째로 영사막(Screen)의 존재를 부정한다. 즉 투명한 창문과 같은 존재로서 상정한다. 이러한 환상이 영화가 간직하고 있는 특수한 이데올로기 의 원천인 것이다"

니콜스의 위와 같은 진술은 소리와 영상들이 어떻게 의미화되는 지를 검토함으로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실재와 공일하다는 환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 는 것이다. 니콜스는 또다른 장에서 영화의 기호와 지시 대상간의 존재론적 유대 즉, 지표적(Indexical)성격은 영화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 하는데 이 경외감의 근저에는 영화가 현실을 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바로 이것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원천인 것으로 간주한다.

쿠엘 Kuehl은 자신의 글에서 비록 자신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상 자료화면과 관련하여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판을 다음과 같이 정리 하고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는 선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사체의 촬영거절이 있을 경우 현실의 일부 만이 전체를 대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이다.두번 째로는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내면으르 표현할 수 있는 화면을 획득할 수 없을 때 대상을 피상적으로 표현하게 되어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90년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에서 스탈린과 홉킨스의 회담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설명하고 있는 내용과는 무관하게 군대행 진이나, 선동적인 벽보 (군화발 소리, 행진곡을 배경으로 하여) 등으로 화면이 구성 되는 데 이는 특히 소련에대한 기존의 고정적인 인식(공격적인 호전광)을 강화시킨 다고 볼 수 있다 (한국사회언론연구회 매체비평팀, 1991)

결국 스탈린, 홉킨스회담에 관한 자료화면을 구할 수 없을 때 사용된 엉뚱한 화면은 본질을 왜곡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예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제작자들에게 있어서는 매체의 특성상(매체의 특권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영상 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식의 한계가 노출된다. (3)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제작자의 이전 세대(즉 자료화면이 없을 경우)에 대해서 는 표현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필자는 당시의 상황을 표현하는 적 절한 자료화면이 존재한다는 경우에도 그 속에 당시의 상황을 찍는 촬영자의 시각이 전제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다큐드라마의 유용성을 옹호하는 자들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전통적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본질적인 왜곡의 요인을 정확히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4)

 

3. 화법의 문제

따라서 전통적 다큐멘터리는 전술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료화면으로는 표현 할 수 없는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주로 해설의 삽입이라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설 명체 형식의 전개방식을 갖는 것이다.


니콜라스는 이에 관해서 다큐멘터리의 내용의 전개는 의미론적인 측면(Semantics, 구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과 활용론적인 측면(Pragmatics, 수사학적인 측면 을 지니는데, 활용론적인 측면이 비록 의미론의 외피를 쓰고 나타나기는 하지만 커 뮤니케이션의 효과는 전달되고 있는 내용의 글자적인 의미보다는 그것의 전달(설득) 전략 (활용적인 측면)에 의해 결정되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고려할 때 활용론적인 측면은 화법의 방식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화법이란 시청자를 특정한 "위치(places)"에 놓이게 하기 위해 소리와 영상이 관계 맺는 방식으로서, 시청자가 영화의 명시적인 주체(이야기의 주체) 로 간주되는 가 의 여부에 따라 나누어지게 된다. 주체로서 인정되는 경우는 직접화법(direct-ad dress, 설명체적 영화의 경우)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간접화법(indirect-addre ss, 관찰체적 영화의 경우)으로 구분된다. 직접화법의 경우에 해설자는 영상과 해설이 일치하는 가의 여부에 따라 권위적 음성이나 신의 음성으로서의 효과를 가 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5)

즉, 이러한 직접적 화법에서 해설자는 종종 당시의 사건을(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닌) 실제로 알고 있는 존재로서 역할을 부여 받으며, 이를 통해 시청자들의 경외 감과 복종심을 획득하는 것이다.

직접화법에서는 결국 시공간적으로 논리가 구성되는 일반적인 허구적 프로그램에 서와는 달리 해설자의 개념구성적 세계 즉, 설명에 의해서 논리가 구성된다. 이때 해설자가 등장을 하게 되면, 해설자는 권위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며 이를 위해 서 해설자는 가능한 한 정면으로 시청자를 직시하는 자세로 영상화된다. 그럼으로 서 해설자는 수용자의 복종심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와 구별하기 위해서 피면담자 는 정면에서 몇 도 빗나간 각도에서 영상화 되어짐으로써 해설자와의 위계관계가 형성된다.

반면에 해설자가 화면에 등장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해설자는 모든 것을 알고있는 신적인 존재로서 수용자에게 전달되어지게 되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영상은 전달되게 된다. 이를 위해서 해설자는 보통 차분하고 권위있는 목소리로서 수용자 를 압도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음성과 영상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해설자가 획득한 권위에 의해서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는 영상의 다른 의미에 ' 진실성' 을 부여해 주기도 한다. 그럼으로서 현실의 한 측면이 현실의 한 단면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채 우리에게 전달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상에 의한 왜곡의 한 측면이 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에서 해설자는 1, 2, 3부를 통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인 국제정치적 시각에서 한반도 전쟁을 조망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각의 정당성은 해설자의 권위적이고 합리적인 음성과 6.25 이전 세계적 인 중요사건에 대한 자료화면을 통해 확보되어진다. 그런데 4부에서 9부에 걸쳐 그려지고 있는 전쟁상황 부분에서, 영상은 국제주의적이고 가능하면 공정하고 객 관적이려던 시각은 사라지고 전쟁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대표하는 것들로 구성 된다. 즉 적과 아의 구별이 강조된다. 유엔군의 피해가 강조되어지는 반면(클로 즈업으로 영상화) 인민군의 시체에 대해서는 일정한 정서적 거리가 유지되도록(롱 쇼트) 영상화된다.

또 유엔군은 해설자가 전쟁상황을 설명하는 동안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이 비추어지지만 인민군은 전투하는 모습만 삽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장면들은 1,2,3부에서 획득한 해설자의 권위에 의해서 '진실성'을 지닌 사실로서 수용된다. 물론 자료화면 획득상의 한계(미군이나 유엔군쪽 진영에서 획득할 수 밖에 없음)나 화면을 삽입하지 않을 수 없는 매체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 으나 해설자가 음성으로서 전달하고 있는 객관적 의미 못지않게 시청자는 '진실' 로서 권위가 부여된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의미 또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무 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결론에 대신하여

다음으로 비록 영상과는 직접적 관련성은 적지만, 다큐멘터리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실적 영상에 의해 제공되는 다큐멘터리이지만 (여기에서 다큐 멘터리의 특권적 위치가 부여되지만)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제 작자의 의도가 개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리스는 다큐멘터리의 몇가지 특징을 언급하면서, 그 목적 또는 시점과 접근방식에 있어서 제작자는 자신들이 의미가 있다고 간주하는 현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자 하며, 이를 위해 정보를 전달하고 그 주제와 관련되어 우리가 일정한 태도나 행동 을 취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하고 있다. (6)

제작자의 의도가 단순한 사실의 전달이라고 하더라도 1차적으로는 그 주제를 선택 하여 수용자가 알 필요가 있다고 판정하는 데에는 제작자의 관점이 개입되는 것이며, 주제에 대한 이해는 그 사항을 이해하는 관점이 개입되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라 고 하겠다. 결국 영상과 관련시켜 본다면 영상의 선택은 제작자의 관점과 무관할 수 가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현실세계를 소재로 하고 현실세계를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현실을 재구성한 다큐멘터리의 수용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하나의 틀이며, 영상의 사용에 주 의를 요하는 점이라고 하겠다.

이상에서 살표본 바와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은 많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시실성과 재구성의 문제. 전달을 위한 방식이 가지는 왜곡의 문제 그리 고 주제를 취급하는 제작자의 관점의 문제 등이 다큐멘터리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성 을 살펴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논의가 아니라 새로운 글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믿으나, 마지막으로 한가지 언급하면 모든 TV 프로그램은 그 기법상 진실을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 한 프로그램은 '진실'을 전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진실에 대한 한가지 입장을 전 달하는 것으로서 구성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주>
1)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관해
①다큐멘터리는 진실한 배경과 진실한 이야기를 촬영하여야 하고, ②원래의 배우(즉 현실제 세계의 행위자)와 원래의 배경(현실세계)으로 연기되는 것이 스크린에 현재의 세계를 나타내는 확실한 기초이며, ③살아있는 장소에서 얻어진 소재와 주제가 연기된 이야기보다 의미가 있다라고 진술 함으로써 로다와는 명확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2)아주 단순한 예를 들어 이승만과 북한의 김일성을 소개하는 화면에서 전통적인 방식 은 이승만, 김일성의 순서인데, 사실상 이것은 보편적ㅇ니 국민의 감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서를 뒤바꾸어 놓는 것은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한 의미부여의 변 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며, 여기에 제작진의 이해가 개입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 다.

3)본고의 목적은 아니나, TV의 영상처리에 있어서 현실세계에 대한 화면을 삽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이러한 왜곡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가지 제안을 한다 면, 이런 경우 스탈린, 홉킨스 회담의 내용을 도표화 한다든가 또는 당시의 상황을 적 절히 함축할 수 있는 만화(일러스트레이션)를 삽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진실을 전달하 는 방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