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먼지를 일으키며 순례길을 찾아 올라가는 탐험대 차량.
고도가 높아질 수록 멀리 키츄강이 모습을 드러내고 평화로운 대자연이 화폭처럼 펼쳐진다.
해발 4천3백미터에 있다는 간덴사원을 향해 오르는 길 옆으로는 야크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고 길 바로 위까지 다가 온 구름들이 풍선처럼 매달려 있다.
30여 분 오름질을 더하니 안내인 뤄부가 간덴사원이 가장 잘 보이는 지점이라고 차를 세운다.
차 때문에 생긴 황토먼지가 사라지자 그림처럼 드러나는 사원.
마치 지중해 산토리니섬의 하얀집들처럼 햇살에 번쩍하는 것이 파란하늘과 맞닿아
신비하기까지 하다.
간덴의 의미는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으로 서방정토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간덴사원은 겔룩파 종파의 창시자인 총카파가 1417년에 설립한 최초의 겔룩파 종파의 사원이다.
간덴사원을 세운지 2년 후에 총카파가 죽자 그의 제자인,갸찹 제와 케드룹 제가 원장의 역할을
이어받아 전통을 이었다. 이들은 총카파의 사상을 심화하고 체계화시켜 교단의 기초를
잡았다고 한다. 현재 티베트 불교의 실세인 겔룩파(노란모자를 써서 황모파라고도 함)는
그렇게 성장하면서 정교합일의 법왕제인 ‘달라이 라마’제도를 정착 시킨다.
그래서인지 간덴사원이 비록 겔룩파 창시자가 설립하고 이 종파의 효시라 해도
간덴의 주인은 달라이 라마가 아니다. 역사상 간덴의 원장은 독립적으로
간덴 트리파(Ganden Tripa) 로 겔룩파를 대표하는 달라이 라마와는 구별되어 왔다.
그만큼 전통이 있고 막강한 힘도 있었던 유서 깊은 사원인 셈이다.
그러나 그런 경외심은 출입구에서 깨지기 시작한다. 간덴사원의 원경을 찍고자 촬영을 하면서
사원 입구에 다다르자 젊은 승려 한명이 찍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달려 나온다.
손에 든 입장권을 보이며 돈을 내란다. 입장료 징수가 얼마나 철저하던지 6대나 되는
탐험대 차량의 문을 열어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인원을 헤아린다.
티베트에서 승려다운 승려가 별로 없다해도 조금 너무한다 싶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걸. 입구에 들어서니 주차장을
꽉 매운 버스가 먼저 보인다. 대부분이 현지인으로 이미 꽤 많은 순례객이 온 모양이다.
대법당으로 가는 길 옆에는 먹거리와 경전 등을 파는 좌판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순례객들과 엉겨 아수라장이다.
우리 탐험대 차량이 신기했던지 어린 꼬마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일순 와악하니 꽁무니를 뺀다. 멀리서 신비롭게 보이던 사원은 가까이 가자 색이 바래
추래해 보이고 곳곳이 허물어져 있다. 어린 승려들은 삼삼오오 사원 여기저기를 배회하거나
양지 바른 곳에서 하품을 하고 있다.
누가 시주를 했는지 음식물을 안고 후미진 구석에 앉아 열심히 먹고 있던 어린 승려는
우리랑 눈이 마주치자 슬며시 돌아 앉는다.
티베트에서 승려는 단순히 승려만은 아니었다.
사원은 학문의 전당이요 종교라는 신앙의 원천이다. 그래서 그 사원에 있는 승려는
최고의 엘리트이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건만 중국의 침략과 문화혁명이라는
회오리는 그들을 한갓 오물을 치우고 쓰레기를 줍는 존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대법당에서의 일이다. 촬영비용으로 중국돈 500원(우리 돈7만원)을 주고
노승 주재하의 법회를 찍을 수 있었다.
수많은 순례객들이 그들의 예불모습을 보고 기도를 드리고 있건만 정해진
시간에 쇼를 하는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건성건성하는 젊은 승려들에게서 어떤 영감이나
총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간덴은 문화혁명기에 홍위병의 파괴가 가장 극심했던 사원 중의 하나다.
일부 티베트인들은 간덴사원이 비행기폭격을 당해 파괴되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간덴사원이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사원이 봉건주의와 미신의 상징이라고
매도한 것도 있지만 오랫동안 간덴사원이 정치권력의 중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티베트인 안내인인 뤄부(26세, 티베트대학 영문과 출신)는,
“문화대혁명때 이 간덴사원의 승려들이 홍위병들에게 극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라고 귀뜸한다.
그래서 더 파괴 당했다는 뜻일게다.
1990년 소수민족에 대한 유화정책을 쓰면서 간덴사원도 비로소 재건이 시작돼 옛모습을
부분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나 아직도 간덴사원의 뒤쪽은 그 옛날의 상처를 증언이라도 하는 듯
폐허의 잔재가 남아 있고, 승려들은 사원을 관리하며 호구지책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라마교가
예전의 권위와 기상을 되찾기에는 아직은 여러 가지가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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