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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日 대중문화 현장을 가다] 上. 대중가요

[日 대중문화 현장을 가다] 上. 대중가요

인기 가수들 "아시아 콘서트는 기본"
10대 위주 댄스음악 주춤…힙합 등 장르 폭 넓어져…J-pop시장 다양성이 무기

록음악 매니어인 중국의 딩 닝(29)은 지난해 중국 콘서트에서 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일본 록그룹 글레이(Glay)의 새 라이브 DVD 발매 소식에 잔뜩 들떠 있다. 싱가폴의 여 레이렁(28)은 일요일 저녁이면 TV채널을 8번에 고정시킨다.

카네시로 다케시(金城武) 주연의 일본 드라마 ‘골든볼’을 보기 위해서다. 일본의 가요, TV 드라마, 영화 등이 아시아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일본에선 이미 “대중문화 분야에 관한 한 대동아 공영권이 이룩됐다”는 자부심섞인 보도가 나올 정도다.

우리나라도 지난달 발표한 ‘4차 개방조치’를 통해 방송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이 내년부터 풀린다. 최근 ‘한류(韓流)’로 아시아에서 호평받는 한국 대중문화와 일본 대중문화의 승부는 어떻게 될까.

이런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일본 대중문화의 현장을 찾았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일본 대중문화의 힘과 향후 우리 대중문화에 미칠 영향을 3회의 시리즈로 짚어본다.[편집자]

지난달 22일 저녁 6시. 도쿄 시부야에 있는 NHK홀은 대낮부터 '팝 잼(Pop Jam)'의 녹화를 기다리던 10~20대 관객 3천여명으로 꽉 채워졌다. '팝 잼'은 일본 대중음악(이하 J-pop)계의 정상급 가수와 주목받는 신인들이 출연해 라이브로 공연을 펼치는 NHK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 방송 다음날이면 출연 가수의 CD가 수천장씩 팔려나갈 만큼 J-pop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첫 무대는 일본은 물론 아시아 각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모던 록 그룹 두 애즈 인피니티(Do As Infinity)의 순서. 여성 보컬인 반 토미코의 내지르듯 거침없는 창법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홀이 떠나갈 듯 환호를 보냈다.

연이어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는 관록의 남성 3인조 그룹 디 알피(The ALFEE)와 아이돌 스타 아베 아미, 초등학생이 낀 소녀 댄스그룹 삐뽀 엔젤스와 15세의 R&B 가수 에밀리가 무대를 달궜다.

이 프로의 아라키 토시유키 책임 프로듀서는 "'팝 잼'은 J-pop의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지표"라면서 "요즘 '팝 잼'을 보면 댄스음악이 주춤한 가운데 J-pop이 록.R&B.힙합 등 다양한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다양성이야말로 J-pop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라는 게 일본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음반 시장 규모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지만 일본에서 연간 발매되는 음반 타이틀 숫자는 오히려 미국의 세배에 달한다.

그런 만큼 세계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독특한 음악을 일본에 가면 들을 수 있다는 게 음악계의 정설이다. "4계절에 남북으로 긴 국토, 아시아 각국의 음악과 미국.영국의 팝음악까지 흡수한 전력이 바로 J-pop이 지닌 다양성의 원천"이라고 음악평론가 담바타 세이이치는 분석했다.

한때 J-pop계도 10대를 위한 아이돌 스타들의 독무대 같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많은 아시아 젊은이들이 MTV를 통해 접한 아무로 나미에, 하마자키 아유미 등 일본 아이돌 스타들의 외모와 패션에 열광하긴 한다.

하지만 최근 일본 가수들이 저마다 새 앨범을 내면 판촉을 위해 아시아 전역으로 콘서트 투어를 기획하면서 J-pop은 장르별로, 가수별로 폭넓은 팬층을 형성하게 됐다. 요즘 아시아에서 한국 가수들의 인기가 높아졌어도 '한국 대중음악=댄스음악'이라고만 치부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따라 아직까지 공식적으론 일본어 음반의 발매가 금지된 우리나라에조차 다양한 일본 가수들의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내년초 일본어 음반시장 개방을 앞두고 준비 작업이 한창인 소니뮤직.EMI 등 다국적 음반회사들엔 벌써"글레이의 음반이 언제 나오느냐" "라캉시에르(L'Arc en Ciel)의 콘서트를 꼭 추진해달라"는 등 팬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할 정도다.

일부에선 ▶국내 음반시장이 극도로 침체해 있고▶열혈 팬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음반을 구입했으며▶일본 가수들의 방송 출연이 금지돼 적극적인 음반 판촉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장 개방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비록 국내 시장을 석권하는 빅스타가 나오지는 못할 망정 록.R&B 등 다양한 장르의 J-pop이 그간의 저력을 바탕으로 골고루 구미에 맞는 팬들을 공략할 것"(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이사)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번 시장 개방으로 한.일 양국의 대중음악계 사이에 협력과 합작이 본격화되면서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표절과 리메이크 차원에서 벗어나 일본 음악가에게 정식으로 작곡 및 연주를 의뢰하거나 양국간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는 활동을 통해 우리 가수의 일본 진출도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최동휘 소니뮤직 코리아 대리)는 것이다.

도쿄=신예리 기자<shiny@joongang.co.kr>

<사진 설명 전문>
J-pop의 최신 경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NHK의 라이브 프로그램 ‘팝 잼’의 MC들. 사진 가운데가 90년대초 큰 인기를 모았던 그룹 샤랑Q의 전 멤버 준쿠다. 그는 이후 연예기획자로 변신, 소녀밴드 모닝 무스메와 재일교포 여가수 소닌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해 '스타 메이커'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