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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스크랩] 피렌체

[테마가 있는 배낭여행]''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대 피렌체
[세계일보 2005-06-16 18:15]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을 위한 곳이야.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지. 언제쯤 같이 올라가 줄래?”

언덕 위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계단을 내려와 아르노 강가의 담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메고 있던 인라인 스케이트로 갈아 신고 mp3 플레이어에 담아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를 재생했다. ‘더 홀 나인 야드(The Whole Nine Yard)’가 흘러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아르노 강가를 따라 놓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피렌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하루밖에 머물 수 없었고, 그 하루도 우피치 미술관이니 두오모니 하면서 바쁘게 돌아다녔기 때문에 이 도시에서 여유를 부리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1년 하고 2개월이 지나 피렌체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내 손에는 가이드북 대신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2권이 들려 있었고, 이어폰을 끼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채 도시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실 피렌체 중심지에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인라인을 타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인라인을 고집한 건 이 도시를 자유롭게 누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마치 영화 속에서 준세가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알레그라치에 다리를 건너 산타크로체 광장쯤 왔을 때부터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버렸다. 샌들로 갈아 신고 두오모를 향해 걸었다.

“준세, 약속해줄래? 나의 서른 살 생일은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그래, 약속해.”

성수기를 살짝 지난 9월 중순이었지만 두오모 광장 주변은 카메라를 목에 건 관광객들로 여전히 혼잡했다. 사람들을 피해 고개를 들고 시선을 하늘 쪽으로 향하자 준세와 아오이가 재회한 장소이자 흔히 피렌체 두오모라고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성당의 빨간 쿠폴라가 눈에 들어왔다. 14개월 만에 만난 두오모를 넋 잃고 바라다보고 있는 사이에 지붕 없는 녹색 마차 한 대가 광장에 멈춰 섰다. 웨딩 촬영 나온 것으로 보이는 일본인 신혼부부가 마차에서 내리자,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검은색 턱시도 차림의 신랑과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두오모의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자 촬영기사가 아닌 지나가던 사람들도 셔터를 연발하며 두오모와 어울린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담으려 하였다. 촬영을 마친 후 다시 마차에 올라 돌아갈 때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축복해주었고, 연인들을 위한 성지인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생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신랑신부는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으로 떠났다.

“필시 두오모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텅 빈 하늘은 나를 압도할 것이다. 푸르게 펼쳐진 하늘은 지상에 달라붙어 있는 스물일곱의 나를 그 기억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훨훨 날아가게 할 것이다.”

시뇨리아 광장을 지나 베키오 다리 주변을 배회했다. 붉은 기가 스며 들은 베키오 다리와 아르노 강의 풍경에서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었다. 아르노 강은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오히려 홍수 날 때 보는 흙탕물에 가까운데 그 색감은 피렌체의 풍경과 어쩌면 그리 잘 어울릴 수가 있었을까. 알프스의 맑고 투명한 물이 이곳에 흐른다면 어쩐지 어색할 것 같다. 그런 건 중세의 모습 그대로인 이 도시에서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부조화만으로도 족하다.

“오르고 싶다.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해가 서녘으로 넘어가려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모조품 ‘다비드’가 서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피렌체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자리 잡고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책을 꺼내서 일단 무작위로 펴본다. 그렇게 펼쳐진 쪽이 마음에 들면 잠시 책에 빠져보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고개를 들어 붉은빛 지붕 위에 걸린 피렌체의 노을에 젖어보기도 한다. ‘포 슈어(For Sure)’를 들으면서….

두오모의 쿠폴라에는 아직 올라가 보지 못했다. 그곳에서 바라다보는 피렌체의 풍경은 어떨까? 피렌체에 머무르는 동안 자주 미켈란젤로 광장을 찾아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피렌체의 풍경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 두오모라면 그 부족함을 채워줄 것 같다.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해본다. 다시 피렌체를 찾는 날, 이곳 미켈란젤로 광장에 오게 될까, 아니면 두오모 쿠폴라에 오르게 될까?

전하상·배낭여행 커뮤니티 ‘떠나볼까’(www.prettynim.com) 회원.

■여행정보

피렌체는 로마에서 기차로 1∼2시간 정도 걸린다. 명소가 모두 시내 중심지에 집중돼 있어 걸어다니면 된다.

저녁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니 당일치기보다는 하루 이상 숙박하는 것이 좋다.

성수기에는 우피치 미술관 등 명소에 사람이 많이 몰리므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것이 좋다.



출처 : 닥터상떼
글쓴이 : 상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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