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들의
실소연발 해프닝
2006.08.17 김세윤(객원기자)
<예의없는
것들>은 데뷔작을 연출하는 신인감독이 갖춰야 할 관객에 대한 예의가 뭔지 보여준다.
첫 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
붙이고 살다보니 어느새 사랑하게 되는 사람도 있다. 짜릿하기로는 첫 눈에 반하는 게 제일이겠지만 그 마음 애틋하기로 따지면야 징글맞게 지지고
볶는 사이 슬그머니 정들어버린 ‘그 인간’을 당해낼 재간이 없는 법이다. <예의없는 것들>은 말하자면 ‘그 인간’ 같은 영화다. 이
유별난 캐릭터들에게 정을 주기까지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그 기묘한 정서에 중독되기만 하면 이 영화 라스트 신이 꽤나 짠할 것이다.
원래 ‘그 인간’들이란 헤어질 때 더 징한 법이거든.
혀 짧은 킬러 킬라(신하균)는 수술비 1억 원이 필요하다. 혀를 길게 만드는
수술이라 돈이 많이 든다. 수술만 하면 자기도 드디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에 부풀어 열심히 돈을 모은다. 타고난 칼솜씨 덕에
살인청부업자로 스카우트되더니 발군의 실력으로 금세 주전 킬러자리 꿰찬 킬라에게 얼마 전부터 자꾸 들이대는 여자가 있다. 술집을 자기 집처럼 알고
지내는 그녀(윤지혜)가 은근 슬쩍 킬라 집에 눌러앉는 것도 모자라 오갈 데 없는 꼬마 녀석까지 킬라네 집으로 기어들어온다. 이 와중에 킬라는
새로운 사건을 의뢰받게 되고 ‘예의없는 것들’만 골라 죽여온 킬라 앞에 참으로 예의 없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말 못하는 자의 억하심정을 표현하는 데 특출난 재능을 뽐낸 신하균은 이번에도 ‘벙어리’ 연기의 진국을 우려낸다. 마임에
가까운 신체언어는 자주 코믹하며 때로 쓸쓸하다. 눈가의 핏발과 입가의 주름으로 건져 올린 변화무쌍 표정연기의 스펙터클도 그 아니면 기대하기 힘든
연기다. <여고괴담> 이후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한 윤지혜도 그 독창적 마스크에 담긴 묘한 마력을 오랜만에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별히 연기를 못하는 특별출연 김민준만 빼면 별 탈 없이 자기 역을 소화하는 배우들 덕에 영화의 빈틈이 많이 메워진 건 다행스럽다.
마케팅 부서는 이 영화가 박장대소 코미디인 것처럼 열심히 포장했지만 아무리 봐도 박수치며 웃을 영화는 아니다. 폭소를 멀리하고
실소를 곁에 둔 해프닝들은 오랜 시시껄렁함 끝에 막판 쓸쓸함을 안겨주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연민을 자아내는 루저(looser)들의 소박한
소망을 판타지로 처리하는 솜씨는 그중 특히 마음에 드는 구석이다. 누가 신인감독 아니랄까봐 가끔은 오버도 하고 더러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벼르고 벼른 감독 데뷔를 안전한 장르 영화로 안착하기보다 자기 식대로 밀어붙인 뚝심만은 예의바르다 할 만하다. 많은 신인 감독들이 하나같이
무난해지려 애쓰는 시대, 이 지독한 ‘예외 없는 것들’ 사이에서 이 실소만발(실수연발이 아니라!) 데뷔작은 몹시 대견한 예외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