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31일 (목) 18:49 경향신문
초고령마을 노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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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야 겨울이 따숩지”-
전국 최고령 지역으로 떠오른 전북 임실. 31일 찾은 임실읍은 황량했다. 한때 전국 고추명산지로 이름을 날렸던 이 곳은 대낮인데도 이면도로를 돌아다니는 사람구경하기가 힘들었다. 읍내 농협삼거리 일대에 들어선 점포는 모두 100여개. 이 가운데 무려 29개의 상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가까스로 만난 김적삼씨(59)는 자신이 이 마을의 막내층에 속한다며 마을이 텅 빈 이유를 설명했다.
“할머니고 할아버지고 시방은 죄다 일하러 나갈 때여. 그 양반들은 지금 돈을 벌어놔야 농한기때 경로당에서 맛난 것도 해먹고 따숩게 보낼수 있능겨. 경로당에도 사람 하나 없을겨”
학암마을에는 경로당이 남녀 구분해 2개다. 경로당 회원은 할아버지 28명과 할머니 52명. 마을 한가운데 있는 경로당에는 자물쇠만 덩그러니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 경로당이야말로 노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시골 노인문화의 중심임을 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삼계리 삼계 경로당 김준식회장(80)은 경로당을 노인들의 공동체 문화터전으로 바꾼 주인공이다. 이 경로당에서는 노인들 대부분이 숙식을 해결한다. 집은 따로 있되 먹고 자는 일은 함께 부대끼며 해결하는 셈이다.
1997년부터 시작된 공동식사는 입소문을 타고 번져 임실군 관내 299개 경로당에서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마을 부녀회원들은 돌아가며 어르신들 식사를 준비한다.
시골마을이다보니 경로당 회원이 적은 곳은 아예 전 가족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다. 도회지에 나간 자녀들이 고향을 찾으면 경로당에 부식을 사다 드리는 게 우선 행사가 됐다.
가덕리 상가마을 진오현씨(66)는 “우리처럼 경로당 인원이 30명이 넘지 않는 곳은 나이가 많지 않아도 마을 식구 전체가 식사를 같이한다”며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임실군 안경희 사회복지사는 “경로당을 주축으로 어르신들의 생활이 이뤄지면서 방치되는 노인이 없어지는 등 사고가 예방되고 보건의료사업을 펼치기도 용이해졌다”면서 “경로당이 사랑방 역할을 해내자 객지 자녀들도 안심 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밝혔다.
노인인구가 많아지자 복지시책도 주요 군정현안이 됐다. 임실군은 내년부터 장수수당을 지급하며 경로당 운영비로 연간 2백만원과 부식도 지원한다. 경로당을 찾아가는 이동복지사업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논밭이라도 갖고 있어 푼돈이라도 만지는 노인들과 달리 정부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의 생활은 여전히 피폐했다.
갈마마을에서 만난 칠순 노부부는 다 쓰러져가는 집 한채와 눈덩이처럼 늘어난 빚더미가 전재산이다. 정부로부터 55만여원의 지원금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이들 부부는 “젊었을 때야 가난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더니 나이가 들어 병까지 얻고 보니 외롭고 힘들어 희망을 잃은지 오래”라고 말했다.
〈임실|박용근기자〉
-“80살은 넘어야 노인축에 끼여”-
“여기선 65세면 청년이고 70대는 청년 고참쯤 됩니다. 80대는 돼야 노인이라 하지요”
31일 경북 의성군은 전체 인구 5만6천5백22명(지난 해 11월 현재) 가운데 65세 이상이 1만8천5백12명(32.8%)으로, 노인 인구 비중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령 사회’여서인지 65세는 노인축에도 못 낀다는 것이다.
경운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젊은 층 보다는 ‘백발 노인’이 더 많다.
안평면 기도1리 마을회관 겸 노인회관. 배복순 할머니(74)는 “대구에 사는 자식들이 오라고 하지만 쉬엄쉬엄 자식들 줄 농사지으면서 친구들과 이렇게 모여 노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67가구에 114명이 산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56명이다.
김금연 할머니(74)는 “시집올 때만 해도 150가구에 600명 정도 사는 큰 마을이었는데 인구가 줄어 지금은 빈집이 20여채나 된다”고 전했다. 할머니들은 회관에 운동기구 등 여가 시설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마을 이장 김정열씨(50)는 “의성군 전체에서 한 해에 감소하는 인구 수가 작은 면 단위 인구 수준인 2,000명 안팎”이라며 걱정했다.
이 곳에서 40분 가량 떨어진 신평면 용봉리는 40가구 76명의 주민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45명으로, 노인 인구 비중이 59%나 됐다.
노인회장인 김열식 할아버지(83)는 “낮엔 모두 들로 나가고 밤엔 농사일로 피곤해 밥만 먹으면 자니 동네가 늘 쥐죽은 듯 하다”고 말했다.
마을 특성에 따라 노인 인구 비중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렇듯 어디를 가나 마을 주민의 주력은 노인이다.
해마다 어버이날을 전후해 ‘전국노인전통기능경연대회’가 열린다. 의성 각 읍·면은 물론 전국에서 노인들이 참가, 가마니 짜기·멍석 만들기·짚신 삼기 실력을 군 단위와 전국 단위로 겨룬다.
의성군 김성영 공보기획담당(47)은 “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농촌 노인복지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의성/최슬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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