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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스크랩] 여행기 1 - 11

티벳 여행기 (상황2)

우려할만한 일은 이런 일련의 티벳문제가 일방통행적인 망명정부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티벳본토 내에서 붉은 한족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다른 여러 경로를 통해서 알려져 왔지만 그것 역시 제 3자들을 통해 전달 되어진 것이다. 티벳본토에는 우리들이 생각하기에 모든 티벳탄들이 자신들의 삶에 고통을 느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은 50년간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행정적인 경험을 쌓게 되어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티벳자치구의 행정기구 안에 있는 대부분의 직급들을 한족에서 붉은티벳탄들로 교체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안들 역시 대부분이 붉은 티벳탄들이다. 그러나 망명정부측에선 여전히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관료체제가 붉은 한족들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여행자들이 다녀가며 보는 이들의 순박함이란 얼마나 순진무구한 생각들인가. 그들의 눈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가난과 식민국가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향만 바라고 오는 것이 아니지 묻고 싶어진다. 어떤 무엇들이 여행자들의 눈에 비치는 진실함인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참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밖엔 살수 없는 때에 쩔은 얼굴들에서 빛나는 초롱초롱한 식민지 어린아이들의 눈빛에서 정신세계의 이상향을 찾는 정신병자들은 자꾸 늘어만 간다.




무비판적으로 받아 들이던 티벳의 해방 문제에 대해선 조금 더 진지하고 그들의 진정한 속내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들의 불행은 달라이 라마제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승려집단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했던 군사 조직을 와해 시켰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고립된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또한 티벳이 결정적으로 붉은한족들에게 침공 당한 것은 내부의 분열에서부터였다. 달라이 라마와 반목의 상태에 있던 판첸라마가 당시 덩싸오핑이 지휘하던 서남군을 불러 들인데 오늘날 티벳이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원인이었다. 당시의 서남군은 장개석군대의 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운남과 사천지구에 대규모의 군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고 장개석 잔당들이 거의 소멸되었지만 당시의 서남군은 그 지역의 치안(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군대였다. 이 점에서 있어서 붉은 한족들이 계획적인 도발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티벳침공의 계획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시기를 결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시 티벳을 침공한 덩샤오핑군은 사천의 성도에서 티벳군(현지의 캄파들과)격렬한 전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티벳의 정치제도는 지방분권제도였다. 달라이 라마성하가 사는 라싸가 티벳의 수도였지만 모든 행정적인 것은 각 지방의 수령(토호)들의 권한이었다. 라싸는 상징적인 신들의 땅이었고 실질적인 사람들이 사는 땅은 별개의 나라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들 지배권력은 나름대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 쿤둔에서 나온 것처럼 실질적인 저항세력은 이들 지방 호족들의 자체적인 군사력이었다. 붉은 한족들이 쳐들어 올 때도 그저 멍청하게 전해오는 소식만 들을 수 밖엔 없던 티벳(달라이 라마정권)은 스스로 그들의 무덤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히말라야지역전문가변방의지킴이응암불패.

출처 : 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글쓴이 : 히말라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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