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중국대륙에 대한 열망은 우연한 기회에 현실로 다가와 주었다. 한번 쯤
가 보고 싶었지만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 가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같이 가기엔 너무 복잡하고 힘들 것 같아 애들이 제법 큰 후에나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감히 시도해 보지도 못 했는데..
막상 3박 4일간의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으니 월말이라 회사일은 왜 이리도
바쁜지.. 출발하기 전날까지도 야근으로 여행준비라곤 대충 가방에 옷가지와 카메라, 그리고 필름 잔뜩 담은 것 뿐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무척
기쁘다.
2005년 8월 25일 (목)
10시 3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환전과 핸드폰 로밍을 한후 일행을 만났다. 가이드 1분과
나를 포함한 일행 8명,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모두들 안면식이 있는 분들이나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나타난 나는 모두들 처음 대하는 조금은 서먹한
분들... 하지만 모두들 형님같고 누님같은 분들...
12시 55분 중국동방항공으로 상해(上海)를 향해 날아가다. 비행기가 뜨자마자 기내식
먹고 음료수 한잔 마시니 어느덧 도착이다. 1시간 50분 정도의 너무도 가까운 이웃 나라..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상해의 농촌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경지정리가 잘 된 논과 멋지게 지어놓은
2-3층의 농가, 우리네 시골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많은 부분 달랐다.
우리 농가는 부락을 이루고 농지는 농지대로 따로 위치한다. 하지만
상해의 농가는 잘 정리된 바둑판의 각 칸마다 1채씩 놓여 있다. 그것도 2-3층의 높이로.. 물만 채워 놓은 큰 논이 자주 보인다. 저수지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자주..
이런 전원 풍경을 사진으로 담지 못 하는게 아쉽다.
포동(浦東)공항에서 가이드의 안내로 버스를 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로 향한다. 배낭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은 이곳을 못 찾아 오랜 시간을 배회한 후에야 겨우 찾아 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버스에 올라 너무도 편히
왔다.
임시정부 청사 앞 : 한국인 관광객으로 왕복 2차선인 도로는 항상 분주하다.
옛 프랑스조계지역에 위치한 이 곳은 중국 곳곳에 위치한 임시정부청사 중 그래도 보존상태가 좋은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래된
골목길의 한 모퉁이에 위치한 임시정부청사는 너무도 초라하게 보이고 곧 재개발로 사라져갈 것 같은 낡은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현대화를 추구하는 상해의 한복판에서 그 당시의 낡은 건물이 아직까지 재개발이 되지 않고 남을 수 있었던 건 근처에 1921년 중국공산당
제1회 전국대표회의가 열렸던 곳이 있기 때문이란다.
임시정부청사는 3층의 조그마한 건물이다. 1층은 회의실, 2층은 김구선생 침실과
사무실, 3층은 다른 투사들의 침실 등이 놓여 있다. 머나 먼 중국 땅에 와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던 이들의 정신과 기개를 가슴 가득 느껴볼 수
있었다.
제주보다도 위도가 낮은 이 곳은 아열대성 해양성 기후로 여름에는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 겨울에는 영하 30도쯤까지 내려간단다. 그러다
보니 건물은 2-3층으로 높게 짓고 어느 집이고 1층은 창고, 부엌, 거실 등으로 사용하고 침실은 2-3층에 위치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된
농가라도 1층으로 지어진 집은 거의 없다고 한다. 임시정부청사의 1층에는 회의실이 있는 이유도 날씨 때문이란다.
이곳 사람들의 우스개
소리에 당국에서 허가받고 거짓말하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들은 일기예보관이란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 까닭에 노동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우가
좋은데, 노동법에 기온이 40도 이상 올라가면 휴업하도록 명시하고 있단다. 그래서 일기예보관은 한 여름 내내 내일의 최고 온도를 39도라고만
예보한단다.
다음 목적지는 홍구공원이다. 이곳은 윤봉길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내던져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발악하던 일제국주의를 응징했던 곳이다. 공원입구에서 내려 공원을 산책하는 동안 만나는 이곳 시민들은 대부분 나이 든 어르신들이다. 공원 곳곳에 놓은 테이블에서 포카를 즐기고,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베드민턴을 치거나 유모차로 아기들을 돌보는... 우리네 공원의 모습도 흡사한, 하지만 어딜 가난 사람이 너무 많은 그런 곳이다.
특히나 공원에 놓인 호수가에 우리에게 익숙한 플라타너스, 버드나무, 그리고 아카시아나무까지 정말 한국의 공원 풍경과 다를게 없다.
홍구공원 한편에 매정(梅亭)이라는 2층 정자가
있다. 윤봉길의사의 항일투쟁을 기념하여 중국정부가 세운 것이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항일투쟁을 높이 칭찬하며
그들 민족도 각성하여 항일에 나서야 한다고 개몽하였다 한다.
서울의 양재시민의 숲에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 상해에도 매헌 윤봉길을 위한 매정(梅亭)이
있었다. 24세의 나이로 이루어낸 너무도 당당한 그의 기개에 그가 집을 나서며 남겼다는 문구가 나의 가슴 깊이 되새겨진다.
"
丈夫出家生不還 : 사내 대장부가 집을 떠나면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
홍구공원은
노신공원이라고도 한단다. 중국의 핍박받는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노신(魯迅)은 공산당을 일으낀 모택동(毛擇東)과 중국 인민들에게 추앙을
받았고 그의 묘가 이곳에 놓여 있다. 모택동 주석이 노신의 묘를 이곳으로 옮기고 직접 친필을 내렸다고 한다.
노신공원의 노신 동상
모택동 주석의 친필
어느덧 어둠이 찾아와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족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으로 갔는데
가이드는 한족이 워낙 만만디이므로 미리 전화상으로 음식 주문을 해 놓아야 한다고 한다. 미리 주문을 해 놓은 탓에 식당에 도착후 바로 음식이
나왔다. 먹다 보니 좀 부족한 것 같아 볶음밥과 고기요리를 하나 더 시켰는데 다행히 볶음밥은 바로 나왔는데 고기요리도 깜깜 무소식이다. 준비해간
소주를 마시느라 안주로 시켰는데... 기다리다 지쳐 그냥 먹는 걸 포기하고 일어나자 싶을 때 요리가 나왔지만 일단 판이 깨지니 분위기가 죽는다.
그냥 먹는 둥 마는 둥 나왔다.
중국인들은 선천적으로 만만디란다. 그러다 보니 길거리에서도 교통질서는 무시되기 일쑤고 편한 대로
다닌다. 그래도 교통사고는 많지 않단다. 왜냐? 만만디니까 서두르지 않으니까. 중국 어디에서든 신호 안 지키는 차량과 사람을 많이 본다.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인데도 그냥 건너는 사람들 많이 본다. 그것도 속터지게 아주 천천히 건너간다.
특히나, 예부터 풍요로운 땅이었던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느리단다. 1년에 2모작뿐만 아니라
3모작도 가능하니 생활에 여유가 있고, 그러니 선천적으로 느릿느릿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어딜 가도 시계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호텔방/로비, 길거리 등 당연히 시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하는 곳에서 시계를 찾을 수 없다. 어찌 본다면 우리와 달리 여유있게 사는게
부럽기도 하다.
이런 한족에 비하면 길림성 등의 조선족은 우리 민족이다 보니 성격이 엄청 급하단다. 또한 부지런하여 상대적으로 경제생활에 경쟁력이 있단다.
저녁식사후 동방명주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88층짜리 건물도 보았다. 상해는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멋진 고층빌딩을 많이 만들었다. 서울에서도 40층 이상의 고층빌딩은 찾아 보기 힘들지만 이곳에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대적 아파트와 전통적 건물이 잘 어울려진 시가지 풍경, 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타워크레인이 자주 눈에 띈다.
빌딩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빌딩기행만으로도 좋은 여행거리가 될 것 같다.
저녁에는 이런 고층빌딩이 모두 외벽에 불을 켜놓고 있어 야경이 너무 멋지다. 88층 빌딩은 저층은
상가로 활용하고 고층은 하얏트 호텔이 운영중이다. 이 건물도 야경이 멋지도록 건물 외벽에 불을 켰으나, 호텔 투숙객들의 불만이 많아 지금은
저층과 전망대가 있는 초고층만 불을 켠다고 한다.
동방명주탑에서 내려다 본 최고층 88층 건물의 야경
동방명주탑에 올랐다. 이곳은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텔레비전 송신탑인데 세계에서 3번째로 놓은 탑이다. 탑밑에서 탑을 올려보며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탑이 워낙 높아 제대로 담지 못해 탑의 전망대에서 팔고 있는 모형을 찍어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동방명주탑에 올라 많은 중국인 인파 속에서 줄곧 63빌딩을 생각했다. 63빌딩을 건설한 후, 우리 국민들도 63빌딩의 수족관과 전망대를
구경하며 우리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 자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골사람 서울 구경오면 꼭 들려야 하는 필수 코스였을 것이다. 상해의
동방명주탑이 그런 느낌이다. 동방명주탑의 전망대에는 수없이 많은 어르신부터 연인들까지 발디딜 틈도 없이 찾고 있다. 이들도 부쩍 성장한 조국의
경제력에 크게 감격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사진 속의 동방명주탑 모형을 바라다 보는 어르신도 뿌듯한 생각을 하실 것이라
여겨진다.
어르신이 들여다 보는 진열장에 동방명주탑의 모형이 가득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상해의 야경은 아주 훌륭하다. 아래로 세계 굴지의 기업체들의 네온사인이
가득하다. 직업이 금융인이다 보니 HSBC, Citibank 등 금융기관이 많이 들어온다. 전망대 안의 상점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으로
가득하다. 자리값이 꽤 비쌀텐데, 가격도 비쌀 것 같아 구경만 하였다.
기념품 진열장
중국 첫날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버스는 달려 쑤저우(蘇州)로 이동한다. 도중에 상해의 외곽지역에서 차를 멈추고 과일과 맥주를 샀다. 야시장엔 닭꼬치를 파는 노점상과 주변에 여름밤을 길거리에서 술판을 벌린 사람들 사이로 과일을 한 아름 담아들고 20위안(약 2,800원)을 지불한다. 이런 분위기에 동참하여 술 한잔 하고픈 그런 야시장이다.
버스는 2시간 가량 달려 쑤저우의 남아호텔에 도착하였다. 가는 내내 이국땅에서의 정취에 빠져
들며, 조국의 광복이라는 가장 숭고한 명분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내던진 그들의 열정을 가슴으로 담아본다. 특히 24살의 윤봉길 의사를 생각하고
그 나이의 나의 삶을 생각하고 어느덧 30중반이 되어버린 나의 젊음을 생각하며 이국땅의 어둠속의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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