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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개론

다큐는 곧 철학이다 - 장해랑 PD의 다큐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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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테마] 2005-11-14 21:06:24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 제작기

                                                     
 글/장해랑 (KBS PD  jhr@kbs.co.kr)
  
5.1채널  서라운드 음향 제작기 - TV에 소리 들려주기 
 
프롤로그-소리 느끼기, 알기
Ⅰ.
5천 가창 오리떼의 군무는 거대한 회오리 폭풍이다. 한 마리, 한 마리 날개짓들은 가늘고 낮은 중저음. 그러나 5천마리가 한꺼번에 내는 날개소리는 폭풍소리 바로 그것이다. 가창 오리떼의 유연하고도 기하학적인 황금빛 군무와 폭풍소리 속에 서면, 그 자체가 전율이고 감동이다.
경주 안강 독락당 앞마당에 바람이 갇히면, 바람은 낙엽을 싣고 내치고, 구르고, 휘돌아감고, 위로 솟구치며 운동회를 연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낙엽의 율동은 단 한번도 같은 장면을 연출하지 않고 그 소리 또한 모두 다르다. 구르는 소리, 회오리 소리, 쏠려오가는 소리, 솟아올랐다 가라앉는 소리…
현장의 소리가 영상에 살아있을 때, 그 소리가 영상의 움직임과 일치할 때 소리는 영상에 놀라운 현장감과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때로는 웅장함으로, 때로는 속삭임으로 그것은 새로운 감동이 된다. 소리는 영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거대한 힘인 것이다.
 
 
Ⅱ.
프랑스인 다큐감독이 이산가족 방송 취재차 KBS를 방문했다.
카메라는 6mm, 감독이 직접 촬영까지 하는데 Audio Man은 따로 있었다. 장비를 봐도 큼직한 Boom-Mic를 비롯해 Audio 장비가 대부분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제작경비 절약의 맨 우선순위가 Audio Man이나 장비일텐데 그들은 정반대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현장음은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인터뷰도 나레이션의 일부이며, 쉬어가는 여백의 요소를 현장음이 맡는다고 배웠다. 그러자면 분위기가 살아있는 깨끗한 현장음, 감정이 살아있는 인터뷰는 필수적이다. 어디 다큐멘터리 뿐이랴.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영상물에서 현장음은 그 차제로 의미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TV에서 소리는 없었다. 그림만이 존재했다. 소리 없는 그림, 당연히 감동도 반쪽, 생명력도 반쪽짜리 절름발이였다.
 
Ⅲ.
디지털 TV 시대가 열렸다.
디지털 TV는 시네마스코프 영화화면(2.35:1)보다는 못하지만 넓은 화면(16:9, 곧 1.78:1), 고화질(최소5배~10배)의 영상에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전후좌우 6개 스피커가 쏟아낸다.
영상은 화면이 인간의 시각에 가깝게 넓어지고, 땀구멍 못자국이 보일만큼 선명성이 높아졌다. 소리도 중앙, 전면좌우, 후면좌우, 그리고 중저음 우퍼스피커의 5.1 채널 서라운드 음향(스피커는 6개나, 중저음스피커를 0.1로 계산)을 이용해 그동안 스테레오 정도의 평면적 음향에서 공간적 입체음향으로 획기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간적 입체음향이란 어떤 것인가?
지금 나는 호젓한 계곡에 위치한 산사에 앉아있다. 정면에서는 예불소리가 들린다. 왼편에서는 계곡물이 졸졸 소리내며 흐르고, 뒤편 먼산에서 산새가 울며 다가왔다 멀어진다. 바람이 등뒤에서 불어와 앞으로 쏠려간다. 바람은 뒤편 암자 풍경을 때리고, 이어 내 앞의 대웅전 풍경을 때린다.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열차가 달린다. 열차소리는 오른쪽에서 다가와 내 앞을 지나 왼쪽으로 사라진다. 바람에 황금들판이 출렁인다. 바람은 저 멀리서 내 앞을 지나 등뒤로 사라진다. 덩달아 벼이삭이 부딪히는 쏴― 소리가 나를 넘는다. 왼쪽 멀리서 참새를 쫓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오른쪽에서는 길게 늘어진 줄들의 펄럭이는 소리가 아련하다.
공간적 입제음향은 소리로 그 자리에 있음을 체험케한다. 영상은 멈춰있지만 우리는 소리를 통해 입장감을 느끼고 영상이 살아움직임을 느낀다. 홈씨어터(안방극장) 구현이 목표인 디지털 TV에서 소리는 아나로그처럼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닌, 오히려 영상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은 우리에게 TV에서 그동안 천덕꾸러기였던 음향의 중요성을 느끼고, 알기를 요구한다. 서라운드 음향 제작은 아주 긴 시간의 경험축적과 전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리 꿈꾸기
Ⅰ.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는 환경부가 선정한 한국의 소리 100종을 그 대상으로 했다.
소리는 3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첫째는 자연과 생명의 소리였다. 물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등 이 땅의 맑은 자연의 소리와 풀벌레, 새 등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소리들은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쉼터와 청량감을 제공할 것이다.
둘째는 고향, 추억의 소리였다. 새벽 닭울음소리, 봄날 밭 가는 소리, 콩깍지 타는 소리 등 고향의 소리와 학교종소리, 풍금소리 등 추억의 소리들은 잃어버린 고향의 정과 동심, 순수의 세계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셋째는 삶의 현장의 소리였다. 겨울 갯벌의 꼬막 잡는 소리, 제주 해녀 숨비소리, 새벽 어시장의 경매소리는 시청자들에게 삶의 의욕과 활력을 부여할 것이다.
 
Ⅱ.
프로그램의 목표는 소리와 영상의 화학적 결합이었다.
소리는 영상에 리얼리티와 생명력을 부여하고, 영상은 소리에 구체성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소리와 영상의 결합은 새로운 이미지와 생생한 감동을 창조해낼 수 있다. 1년간의 작업기간 내내 영상의 동작과 소리의 일치를 위해 노력했다. 특히 생명의 소리, 그중에서도 매미와 풀벌레의 울음소리는 날개와 몸의 미세한 움직임을 빅클로즈업으로 영상에 담고 그에 따른 디테일한 소리를 일치시켜가며 작업했다.
예를 들어 매미는 배를 수축해 소리를 내는 관악기다. 매미 종류에 따라 그 장단, 가락이 모두 다른데 높은 나무 위에 위치하고 예민하기 그지없는 매미들의 몸의 움직임과 소리를 녹취하는데 무진 애를 썼다. 그중 애매미의 울음소리는 환상적이다. 애매미의 절묘한 배의 수축 움직임과 그에 따라나는 울음소리는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섬세한 소리와 일치하는 디테일한 영상구현은 실패를 거듭하며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그러나 성공한 것은 그 결과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대상은 생명만이 아니었고, 영상의 사이즈도 클로즈업만이 아니었다. 자연, 추억, 고향, 삶의 현장의 소리에서도 소리와 영상의 일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롱샷 앵글에서도 그 속에 숨어있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
 
Ⅲ.
소리와 영상이 만난 감동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나레이션을 배제키로 했다. 음악도 가능하면 절제하고, 소리도 그동안 사용하던 인공적인 효과음향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직접 녹취한 소리만 사용키로 했다. 그러나 만들어진 눈보라 소리, 비바람 소리, 대나무 사각이는 소리들이 우리 귀에 더 익숙했고, 야생성이 살아있는 현장의 소리들은 오히려 어색하게 들렸다.
주변의 동료들은 그래도 나레이션이 있는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처음에 주제와 Image별로 나누었던 편집을 시청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4계로 나누어 재편집했다. 대신 파트별로 ‘겨울, 또 하나의 활력’, ‘봄, 깨어남’, ‘여름, 땀 그리고 에너지’, ‘가을, 수고한 자의 풍요’, ‘겨울, 쉼 그리고 여백’등 제목에서 원래 생각했던 이미지를 되살리고, 대상 하나하나의 자막을 ?참숯 익는 소리?, ?마지막 비둘기호 정선선 기적소리?, ?시골분교의 학교종소리?, ?해녀들 숨 고루는 숨비소리?, ?가을바람에 풍경 우는 소리? 등으로 표현, 해설의 기능과 이미지를 설명하는 효과를 동시에 노렸다.
 
소리만들기
Ⅰ.
소리 꿈꾸기를 구현하는 작업은 까다롭고 디테일한 과정을 요구했다. 소리 꿈꾸기는 디지털 TV의 중요한 특성인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실현하는 일이고, 5.1채널 서라운드 음향 제작에 필수적인 것은 깨끗한 현장음을 최소한 스테레오로 녹음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제대로 된 동시녹음 기술조차 불가능한 오늘의 현실에서, 현장음을 스테레오로 녹취하기 위한 장비도 마땅치 않았고, 그 경험 또한 전무한 것이 어려움으로 떠올랐다. 중계기술국의 서라운드 음향연구팀(그들은 이미 스포츠중계를 서라운드 음향으로 실험제작한 경험이 있었다)과 협의 끝에 다음과 같은 현장녹취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현장음 녹취는 4ch로 하기로 했다.
2ch은 목적음 녹음에, 2ch은 Ambience(주변효과음) 녹음에 사용되었다. 녹음을 위해 DAT(Digital Audw Tape Recorder) 2대가 필요했다. DAT 1대에 2ch의 녹음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목적음 녹취에 사용된 2ch은 다시 카메라로 연결했다. 영상과 소리가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 CAM와 DAT1, DAT2를 Time Code로 연결했다. 그럴 경우 Video Tape 속에는 2ch의 대상음 소리가 들어가 있고, DAT1 Tape에는 대상음 2ch, DAT2 Tape에는 Ambience음 2ch이 들어가게 되는데 Time Code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 Video와 목적음, Ambience를 연결해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했다.
참고로 영화제작의 경우 배우들의 대사는 동시녹음으로 되고, Ambience는 별도로 녹음해 후반 음향 작업에만 20~30일을 투자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5.1서라운드 음향 제작에 Digital Stereo 녹취는 기본이라는 정도였다. 제작팀이 시도한 현장에서 4ch 녹취가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지수다. 어떤 이는 현장에서 녹취할 때 어느 정도까지 소리를 가공하며 녹취해야 후반부 작업이 수월하다는 이도 있다. 현장음 녹취 시스템은 앞으로도 연구해야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다.
Ⅱ.
소리를 영상에 들려주는 일은 Digital TV의 특성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함이다. ‘소리와 영상의 일치를 통한 화학적 결합’이란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소리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욱이 나래이션이 없는 소리와 영상만의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구체적인 앵글과 그에 따른 디테일한 소리가 동시에 고려되어야 했다.
구성안은 영상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그에 따른 아주 미세한 소리가지 반영했다. 아이템 하나하나는 그 안에서 스토리를 가지고 흘러가며 완결되는 형태를 취했고, 100가지가 넘는 아이템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데 애를 썼다.
PD, 작가, 카메라, 음향팀 사이에 정확한 이미지 공유가 필요했다. 어떤 느낌이며, 그 소리를 녹취할 때 앵글의 구도와 사이즈가 어떠해야 하는지까지 출장 전에, 현지에서 수시로 토론하며 서로의 간격의 폭을 좁혀나갔다.
Ⅲ.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을 위해 많은 장비가 동원되었다. 필요한 DAT 2대 중 한 대는 중계기술국 것을 사용하고, 나머지 한 대는 구입해야 했다. 마이크도 중계기술국 것을 사용했는데 지향성 마이크인 MKH416 2개, 초지향성 마이크 MKH816 2개, 무지향성 마이크인 C391 2개, B&K4002 2개, SM63 2개, 그리고 핀 마이크 ECM77B 2개, 무선 핀마이크 UHF SK50 2개를 준비하였고 높은 곳의 소리 수음을 위해 Boom 대와 낚시대, 그리고 바람소리 녹음을 위해서는 윈드스크린에 Harry Cover를 사용했다.
일반적인 목적음은 MKH416, B&K4002를 많이 사용했고 멀리 떨어진 목적음은 초지향성 마이크인 MKH816를 사용했다. 멀리서 소음이 들리거나 마이크를 가까이 할 수 있고 목적음만을 또렷이 녹취할 때는 SM63을 사용하였고, 새?동물에게 노출을 피하고 근접 마이킹을 할 경우 핀 마이크를 사용했다. 왕쇠똥구리 경단 굴리는 소리, 누에 뽕잎 갉는 소리 등은 소리 자체가 워낙 적어 수음이 까다로웠다. 성능 좋은 B&K4002를 쓰면 목적음은 좋으나 주위소음이 다 들어왔다. 소음을 피하기 위해 SM63을 목적음을 가까이 대고 사용하려 하면 카메라 샷을 피할 수가 없었다. 상황에 따라 여러 종류의 마이크를 사용해 다양한 위치에서 별도로 녹음해 두기도 했다.
Ambience 소리는 사방의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같은 것이어서 주로 AKG S391 마이크에 Harry Cover를 씌워 사용했다. Ambience 마이크와 목적음 마이크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것인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는 항상 고민꺼리였다. 음향팀들은 현장에서 귀를 쫑긋이며 목적음과 Ambience 소리를 사전에 들어보고 장비를 세팅했으며, 사전에 한번 녹음해 들어본 다음 소리가 괜찮을 때 촬영에 돌입했다.
촬영시간은 평소보다 4배 가까이 걸렸다. 길게는 100m나 되는 Line을 깔고 장비를 세팅하는데, 그리고 깊은 산속까지 침범한 비행기, 경운기, 고함소리, 자동차 소리가 멎기를 무작정 기다리고, 다시 소리와 영상을 일치시키느라 시간이 걸리고 장비를 철수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촬영시 카메라와 음향 사이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적이다. 대상의 소리를 딸 때 대상의 사이즈에 따라 마이크의 위치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Z.I 했을 때, Z.O 했을 때 마이크의 위치를 잡기 어려워 자주 NG가 났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호흡이 맞아갔다. 현장 녹취시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소리와 영상의 일치였다. 영상 속의 대상은 무엇인가 특정만 행동을 하는데, 소리가 일반적인 것이라면 느낌이 달라진다. 그 동작에 맞는 소리를 정확하게 녹취하기 위해서는 기다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야했다.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여러 가지일 경우에는 현장의 소리를 하나하나 녹취했다. 예를 들어 봄날 밭 가는 현장에는 다양한 소리가 존재한다.
먼산 새소리가 있고, 농부의 ‘이럇!’소리, 소 헐떡이는 소리, 땅 위 흙이 갈리며 뒤덮이는 소리, 쟁기의 삐걱소리가 있다. 이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녹취한 다음 다시 그 소리들을 일일이 별도로 녹취해야 후반 작업시 5.1서라운드 음향제작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Ⅳ.
화면 16:9의 영상물과 현장에서 4ch로 녹취한 소리를 Monitor할 설비가 없었다. 편집실의 Monitor는 전부 4:3이었고 Digital이 설치된 부조에서도 정확한 16:9 화면을 확인할 수 없었다. 화면도 확인키 어려운데, 화면과 동시에 4ch의 현장음을 Monitor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소리와 영상의 화학적 결합, 그리고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새로운 감동을 꿈꾸면서 촬영과정에서 제대로 촬영되고 있는지, 그 느낌이 괜찮은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Monitor를 위해서는 우선 16:9 TV가 필요했다. 음향 콘솔에 오디오를 들을 DAT 2대가 필요했고, Time Code를 읽는 제너레이터, Amp, 스피커 4대가 필요했다. 그 시설은 방송국 내 어디에도 없었다.
생각다 못해 삼성전자에 65인치 Monitor(16:9 화면)를 어렵게 협찬 받았다. 신관 지하 더빙실에 양해를 얻었다. 작은 스피커 2대를 보태니 그런대로 Monitor할 시설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늘 고정적인 일이 잡혀있는 더빙실에서 찍어온 촬영원본을 일일이 확인하며 모니터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송이 끝난 뒤 한참 시간이 지났지만 16:9 화면과 현장 녹음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최소한의 Monitor 시설은 지금도 반드시 필요하다.
Ⅴ.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작업은 외부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작업을 위해서는 Post Surround Mixing에 필요한 장소와 장비가 필요한데, 방송국 내에서는 없기 때문이다. 외부의 작업실은 전면에 대형 스크린이 있고, 콘솔과 소리를 입력하고 가공할 컴퓨터 시설, 그리고 제작된 서라운드 음향을 들을 수 있는 6개의 스피커가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서라운드 믹싱은 오랜 경험을 쌓은 전문 인력도 필요하다.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6개의 스피커에서 그냥 녹취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Digital TV의 서라운드 음향은 가공된 소리다. 앞서 얘기한 산사의 경우를 서라운드 음향으로 다시 재현해보자.
전면 센터 스피커에서는 목탁, 염불소리가 계속 들린다. 바람이 뒤편에서 불어와 앞으로 지나가며, 내 뒤의 풍경을 건드리고, 앞의 풍경을 건드린다. 풍경소리는 뒤쪽 스피커에서 내 앞쪽 스피커로 옮겨온다. 뒤편의 왼쪽 스피커에서 오른쪽 스피커로 새가 날아가며 운다. 오른쪽 스피커에는 계속 졸졸 물소리가 들린다. 황금들판의 경우라면 앞의 오른쪽 스피커에서 기차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며 센터 스피커에서 가장 크게 들리다가 왼쪽 스피커 쪽에서 점점 사라진다. 바람이 전면에서 불어오면 벼이삭의 쏴― 우는 소리가 전면 스피커에서 내게 몰려와 뒤편 스피커로 옮겨간 다음 사라진다.
이처럼 서라운드 음향은 내가 어느 현장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가공해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 한 장소에서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소리들을 녹취하는 것이고, 이 소리들을 일일이 컴퓨터에 입력해 깎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앞에서 뒤로, 대각선으로 이동하는 입체감을 살려내는 것이다. 곧 서라운드 음향은 현장의 소리를 공간적 개념으로 가공해 6개의 스피커에 적절히 분배해내는 기술인 것이다.
5.1 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제대로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이런 소리의 입체감, 공간감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며 사전에 철저한 기획과 후반 작업시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다음은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를 제작하며 느낀 체험이다.
  모든 곳에 5.1 채널 서라운드음향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화면이 좁을 경우, 예를 들어 매미가 울고 있는 타이트한 영상에는 서라운드 음향이 끼어 들 자리가 없다. 매미가 울고 있는 숲 전경이 나오면 매미소리와 함께 숲의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가 들어갈 공간이 생긴다. 다시 말하면 영상에 소리가 들어갈 공간을 사전에, 촬영 시에 고려해야한다는 뜻이다. 한 시퀀시 내에의 cut의 순서와 변화를 위해서, 또는 장면과 장소, 계절변화 사이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그리고 프로그램 전편의 흐름까지 고려한 소리가 살아있는 영상이 필요한 것이다.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 타이틀을 김홍도의 풍속도 속에 소리가 들어있는 현장을 순차적으로 배열하고, 그 그림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가게 한 것도 시청자들이 소리의 이동을 프로그램 처음부터 느끼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
  소리의 다양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편집 요구된다.
프로그램에서는 사찰의 사물(법고, 목어, 운판, 범종)과 사찰에서 나는 각종 소리(작은 종, 목탁, 징 등)를 혼합해 뮤직비디오를 시도했다. 앞에서 작은 종소리가 들리면 뒤에서 법고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범종소리가 들린다면 사찰의 아침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에서였다. 실제로 프로그램에서도 그 효과를 제대로 살리진 못했지만,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이런 장치를 주는 것은 또 다른 소리의 묘미를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cut의 길이가 확보되어야 한다.
촬영한 분량이 아까워 프로그램 속에 가능한 한 많은 소리를 담으려 cut의 길이가 짧아진 것은 큰 실수였다. 소리는 때로 시작의 느낌과 여운의 맛을 요구한다. cut이 짧으면 이 소리의 느낌과 여운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가장 아쉬웠던 곳은 얼음 깨지는 소리였다. “쿵­쿠구 궁”하는 깨어지는 소리의 맛을 cut이 짧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던 것이다.
 
에필로그-다시 소리를 꿈꾸며
디지털 TV가 성공하기 위해선 천대받고 있는 소리를 영상에 다시 돌려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니 그냥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가, 내가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소리에 입체적 공간까지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장 녹취에 필요한 전문인력과 장비, 그리고 기술이 필요하며, 녹취한 소리를 전문적으로 모니터할 최소한의 시설, 또한 5.1서라운드 제작을 위한 전문인력이 양성되고 시설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실정은 그 어느 단계에서도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화면은 16:9인데, 소리는 그냥 Stereo 정도로 방송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서라운드 음향 제작에 필요한 모든 단계가 어느 순간,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준비하며, 경험한 전문가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로 여는 소리의 사계>처럼 서라운드 음향 연구팀들이 막간의 시간을 내 출장 가서 소리를 녹취하고, 자기 일이 끝난 밤을 이용 한달에 걸쳐, 그것도 외부 스튜디오에 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제작하는 현재로는 여전히 갈길이 멀다.
현장녹음의 담당부서는 효과부가 될 수 있고, 중계기술부도 될 수 있다. 지금은 유명무실한 영상제작국의 오디오맨을 진정한 오디오맨으로 육성하는 방법도 있다. NHK는 서라운드 음향제작 경험 축적을 위해 별도의 TASK FORCE 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준비없이 Digital의 음향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국내 최초 16:9 화면, 5.1채널 서라운드 음향을 제작했다는 자부심은 1년이 지나면서 빛바랜 추억 속의 앨범이 되고 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준비하고 실험하고, 경험하며 전문가를 키워내야 진정한 Digital 시대를 열 수 있고 세계와의 경쟁에서 이겨내며, 무엇보다 시청자들에게 최고 Quality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데 지금은 반쪽 절름발이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꿈꾼다. 소리는 살아 있다. 소리는 영상에 리얼리티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소리와 영상이 만나면 생생한 감동이 된다.  
 
사진 출처 : 김현태, 네이버 이미지  / 글 출처 : 방송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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