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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대역사] 테오티와칸의 해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멕시코 고원에 우뚝 선 중앙아메리카의 혼(魂)
한 변의 길이가 150~230m…피라미드 정상에서 '피 즐겼다'는 월신에 제물 바쳐
피라미드 하면 누구나 이집트를 떠올리게 되겠지만 중앙아메리카에도 피라미드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웬만한 유적지라면 하나 이상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10만기(基)에 이른다고 하니 이집트의 그것(80기)을 크게 압도한다. 게다가 형태까지 다양하여 흥미를 자아낸다.
중앙아메리카 땅에 피라미드가 최초로 축조된 것은 대략 기원전 10세기 전후. 멕시코만에 연한 동부 해안지대(중심도시: 베라크루스)에서였다. 이곳에선 높이 30m 정도의 피라미드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몸통은 원래 없었는지 거대한 두상뿐인 현무암 인두상(人頭像)이 다수 발견됐기 때문이다.
투구처럼 생긴 모자를 꾹 눌러 쓴 인두상의 얼굴은 대체로 평평한 편이나 눈은 크고 그 꼬리는 양쪽으로 처져 있으며 낮고 펑퍼짐한 코에 두툼한 입술을 하고 있다. 큰 귀 아래엔 특이한 장식이 붙어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주인공은 이곳에 사는 원주민 인디오가 아니다. 오히려 흑인에 가깝다. 연구 결과, 이 인두상은 기원전 800년경 올메카(Olmeca)인이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흑인의 모습을 한 이 인물은 누구인지, 또 어디서 왔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971년 노르웨이 출신의 해양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인 토르 헤이에르달은 모로코 서부 해안에서 이집트의 기자(피라미드가 있는 곳)에서 건조한 갈대 배 ‘라(Ra·태양신)’호를 띄웠다. 바람과 해류의 힘만으로 대서양을 건너 멕시코 동부 해안지대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렇게 고대인의 항해방식과 배를 이용하여 대서양을 건넘으로써 이집트 문명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됐다는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첫 번째 항해는 실패했으나 이듬해 가진 두 번째 탐사는 성공했다. 헤이에르달은 멕시코 땅에 피라미드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고향이 바다를 통해 아프리카 대륙과 닿아 있는 동부 해안이라는 사실, 인두 석상의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올메카 문명은 이집트에서 건너왔거나 그게 아니면 적어도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믿었다. 물론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전문가는 소수이지만.
기원전 1200년경 일어나 800년경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다 그로부터 300년 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홀연히 사라져버린 올메카 문명은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시발점이자 모태다. 그들에 의해 시작된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과 인두상, 그리고 도용과 토우에서 보여준 뛰어난 조각술은 그후 테오티와칸·톨테카·아즈텍·마야 문명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올메카의 문화적 전통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집단은 기원전 2세기 해발 2000m의 멕시코 고원에 등장한 테오티와칸(Teotihuacan)인이었다. 테오티와칸은 ‘신의 도시’란 뜻으로 동명(同名)의 신전 도시에서 유래됐다.
신격화한 뱀의 형상 새겨져 있어
유적의 입구 노릇을 하는 케찰코아틀 신전에는 ‘깃털 달린 뱀’, 즉 케찰코아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중앙아메리카에 문명을 전달해준 주인공이라 신격화된 것이다. 이 전통은 후대의 문화에도 이어졌다. 멕시코 땅에는 뱀, 그 가운데서도
방울뱀이 특히 많다. 독성이 강해 한번 물리면 대부분 사망이다.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이 뱀이 갖고 있다고 하여 신격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기서부터 폭 43m, 길이 4㎞의 ‘죽은 자의 길’이 남에서 북으로 곧게 뻗어 있다. 이 길의 명칭은 후대의 아즈텍인이 붙인 것으로 희생제물을 바칠 때 이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길의 동쪽 변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해의 피라미드’가 서있다. 전문가들은 하루에 3000명이 투입됐다 해도 30년은 족히 걸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에 근거하여 전성기 때의 인구를 12만에서 20만 정도로 짐작한다.
해의 피라미드는 방단형(方壇形) 4단 구조이며 정점이 없다. 이런 이유로 흔히 ‘윗동이 잘린 피라미드’라 불린다. 뾰족한 정점을 가진 이집트의 방추형 피라미드는 오직 파라오(왕)의 무덤으로 건립됐는 데 반해 해의 피라미드를 비롯한 중앙아메리카의 피라미드는 신전 역할을 했다. 테오티와칸인은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피라미드 꼭대기에 신전을 두었고 또 그곳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까지 설치했던 것이다.
높이 66m, 바닥의 한 변이 230m인 해의 피라미드에는 248개의 계단이 나 있다. 계단의 경사각은 대체로 43.5도라 이집트 대피라미드의 52도보다는 완만하나 사람이 오르기에는 좀 가파른 편이다. 그런데도 신관들은 희생제물을 들고 신전으로 올라가 의식을 치렀고 예배자들은 아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런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계단은 하늘을 향해 난 사다리 같다.
테오티와칸인은 춘·추분 날 한낮이면 완벽한 직선 그림자가 피라미드의 서면 아랫단에 나타나도록 했다. 이를 발견한 후대의 아즈텍인은 그래서 ‘해의 피라미드’라 했다. 전체 크기는 250만㎥다. ‘죽은 자의 길’이 끝나는 곳엔 ‘달의 피라미드’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까지 운반된 희생제물은 이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신에게 바쳐졌다. 그러므로 이곳은 인신공희의 현장인 셈이다. 그 앞의 넓은 광장은 제의가 벌어졌던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높이 46m, 바닥의 한쪽 면이 150m인 이 달의 피라미드(전체 크기 100만㎥)는 여러 신 가운데서도 피를 즐겼다는 월신(月神)에게 바쳐진 것이라 인신공희가 빈번히 행해졌던 것이다.
문화적 전통은 마야인들에게 이어져
인간이 자신과 똑같은 인간을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은 분명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행위다. 그런데도 고대문명권에서는 꽤
오랫동안 그런 일이 자행됐다. 생각하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원래 인신공희는 속(俗)에서 성(聖)으로 이행하는 성화(聖化)의 한
과정이었다. 제신들이 죽음으로써 해와 달이 힘을 얻어 다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신에게 힘을 부여하기 위해 인간의 희생제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소생한 신이기에 다시 인간에게 축복과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면서.
이토록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했던 테오티와칸인은 7세기경 어디로 이주한 발자취나 정복당한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문화적 전통, 그 중에서도 피라미드 축조술은 마야인에게 그대로 상속됐다. 마야문명이란 유카탄 반도와 그 아래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을 터전으로 하여 8~10세기 크게 융성했던 고대문명으로, 이들 역시 신전형 피라미드를 축조했기 때문이다. 치첸이차의 쿠쿨칸 신전, 욱스말의 ‘마법사의 피라미드’, 팔렌케의 ‘비문(碑文)의 피라미드’, 엘타힌의 ‘벽감(壁龕)의 피라미드’, 과테말라 티칼의 신전Ⅰ·Ⅱ 등 다수의 피라미드, 온두라스 코판의 피라미드 등이 그 대표적 물증이다. 이들 피라미드는 꼭대기에 신전을 두었고 계단의 경사는 가파르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이라 희생제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빨리 정상으로 운반해야 했던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마야 유적지에는 어김없이 구기장(球技場)이 있다. 신에게 바칠 제물은 ‘가장 힘 센 자’가 돼야 했기에 그들을 제물을 선정하기 위해 구기 경기를 벌였고, 거기서 최우수 선수를 가려냈다. 최우수 선수가 가려지면 주술사는 의식을 치른 다음 그의 가슴에서 심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아직도 뜨거운 심장을 차크몰(chacmal)이라 부르는 제상에 올렸다. 앉은 자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포즈의 차크몰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올메카에서 시작되어 테오티와칸에서 꽃이 핀 신전 형태의 피라미드 축조 현상은 무려 2000년 이상 지속됐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1200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는데. 따라서 그들의 문화적 틀 또한 그 속에서 이루어졌다. 피라미드 축조술은 결코 과소 평가할 수 없는 고대 중앙아메리카 특유의 문화 현상이었던 것이다.
[자료출처: 주간조선(권삼윤 역사여행가)] <자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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