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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넋, 피렌체 ( 이태리 )

[ 유럽여행 ] 르네상스의 넋, 피렌체 ( 이태리 ) 와우

피렌체는 13∼15세기에 신 중심의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정신이 태동되고 개화된 본고장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거쳐 피렌체로 간다. 피렌체란 꽃의 도시란 뜻, 영어식으로는 플로렌스다. 로마와 밀라노에서도 비행기로 각각 45분 거리, 이탈리아 한 가운데에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위치하였으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작고 조용한 곳이었다.

보통 베네치아에서 피렌체로 가는 여행객들이 피렌체 시내로 들어가는 통로는 북쪽. 그러나 우리는 먼저 전체 도시를 조망하기 위해 아르노강가 작은 언덕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마치 서울의 한강과 남산 같은 구도지만 규모로 보면 훨씬 작은 이 공원 한가운데 르네상스기의 대표적 조각이자 최초의 나체상인 다비드가 우뚝 서 있다.

광장엔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지만 여전히 한가한 느낌이다. 처음 이 도시를 보는 사람 누구라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도시가 느껴진다. 한눈에 피렌체 시가지가 다 보인다. 도시 전체가 온통 붉은 벽돌 지붕 이루어진 것도 아주 특이하다. 관광 일정을 대강 잡으니 벌써 중세적 도시 장미색 거리 한가운데 들어온 기분이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기 위해 따라가는 강가에는 산보하는 노인, 물장난하는 사람, 낮잠 자는 사람, 작은 소품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파는 젊은이 등 어느 시골 마을 개울가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다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점포와 사람들로 복잡하였다. 특이한 다리의 구조와 섬세한 귀금속 세공품류가 르네상스의 영광을 빛내는 조각과 회화와 건축들을 예고하는 듯 했다.

피렌체는 13∼15세기에 신 중심의 중세 암흑기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정신이 태동되고 개화된 본고장이다. 브루넬레스키, 단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갈릴레이, 라파엘로, 마키아벨리 등이 활동한 장소로 그들의 위대한 업적들이 그대로 살아 오늘로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에는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자였던 메디치가의 후원과 가문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역사로 살아있다.

실제로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 있는 백합꽃과 환약의 상징인 메디치가의 문장이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한 시점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역시 우피치 미술관. 옛날 메디치가의 사무국이었던 장소로 르네상스 당시의 회화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그 유명한 보티첼리의 '봄','비너스의 탄생'뿐 아니라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등 미술관 2,3층에 45개의 전시실이 미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이 황홀한 장소다. 자연 채광을 이용한 전시실이나 조개 진주층을 이용한 환상적인 팔각형의 천장 장식도 놓치고 싶지 않은 볼거리다.

그러나 바쁜 관광객의 입장에서 언제까지 그림 앞에 서 있으랴, 꼭 보고싶은 회화가 걸린 전시실을 골라 하나라도 제대로 감상할 수밖에. 반드시 사전에 안내도나 설명서를 보기 권한다.

미술관 옆으로 베키오 궁전, 관광객이 줄지어 있고 즐비한 조각과 분수, 바로 이곳이 피렌체의 중심지 시뇨리아 광장이다. 시청사인 베키오궁전 정문 앞에는 비록 모조품이지만 헤라클레스와 다비드상이 당당하게 위치하고, 사바나의 약탈상과 넵툰의 동상, 그리고 피렌체 공화국을 일으킨 코지모 메디치의 동상, 분수, 주변의 많은 조각과 부조, 산 마르코 수도 원장이었던 사보나롤라의 화형터 임을 알려주는 비 등 광장안에는 르네상스 당시의 기념비적인 것들이 거의 다 남아있다.

소박, 강건해 보이는 고딕풍의 건물 베키오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피렌체의 상징 사자상이 먼저 눈에 뛴다. 안뜰의 작은 분수와 2,3층의 '1200년대의 방' 등 재미있는 이름의 방들을 통해 당시의 회화나 내부 장식도 견학할 수 있고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의 서재도 볼 수 있다.

궁전 탑 위에 오르면 광장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과히 넓지 않은 광장 곳곳에 사진 찍고 휴식하는 관광객들로 하여 경쾌하고 활기차다. 걸어다닐 수 밖에 없는 피렌체 관광의 특성상 궁전 앞에는 관광객을 유혹하는 마차들이 줄지어 있지만 노천 카페에서 한 잔의 차로 잠시 쉬어갈 일이다.

광장에서 동쪽으로 길을 따라 10여분 걷다보면 산타 크로체 교회가 나타난다. 위치상 빼놓기 쉬운 이 교회는 그 부속 건물, 장식물 등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다. 넓은 교회 내부에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마카아벨리 등의 묘가 276개 바닥과 벽면에 나열되어 있다. 가묘이긴 하지만 단테의 묘도 보인다. 우리와 전혀 다른 장례 문화를 생각하며 잠시 무거운 침묵. 기둥 부조인 '수태고지'나 십자가 형상 등 도나텔로의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멀지 않은 곳에 '단테 알리기에리가'라는 좁은 뒷골목이 있다. 두 세 사람 다닐 정도로 좁은 골목에다가 비슷한 중세풍의 벽돌집들이 줄지어 있어 찾고 보니 가까운 곳인데 빙빙 돌아왔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은 아름다운 아르노 강변의 큰 도시"라는 "신곡"의 한 글귀가 최후의 중세인이자 최초의 근세인이라고 하는 단테가 태어난 집임을 말해주고 있다. 단테 600주년을 기해 재건축된 기념관 안의 벽면에 부조된 단테 상반신 모습은 수백년의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영원한 사랑을 전해온다.

교통과 금융의 요지로 피렌체의 번영를 대변하는 것은 역시 화려한 시가지의 건축물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가능한 장엄하고 호화롭게' 지었다는 두오모 성당이다. 약 175년에 걸쳐 흰색, 핑크, 그린의 세가지 대리석이 기하학적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꽃의 성모 교회'로 3만명이 모일 수 있는 규모이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내부는 생각보다 검소, 별 다른 장식은 없고 몇 개의 아름다운 부조와 미켈란젤로의 제자 바자리가 스승의 그림을 본 뜬 '최후의 심판' 이 천정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성당 지하는 4세기에 세워졌던 산타 레파레타 교회터로 여기에 두오모 성당 뿐 아니라 피렌체의 화려한 도시 건축을 대부분 설계한 브루넬리스키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두오모와 같이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건축된 8각형의 건축물은 성 조바니에게 바쳐졌다는 세례당이다. 동남북에 3개의 청동문이 있는데 두오모 성당을 보고 있는 동쪽 문은 미켈란젤로가 이름붙인 그 유명한 '천국의 문'이다.

두오모의 남쪽으로 있는 조토의 종탑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누구의 예술보다 완전한 것'이라고 말을 들었을 정도로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걸작품이다. 색채나 모양, 부조등이 경이스럽다. 또 그 옆의 두오모 미술관...

우피치 미술관에서 시뇨리아 광장, 두오모에 이르며 뒷골목은 더욱 중세적 분위기이고 큰 길가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기이한 느낌을 가져온다. 아직도 그 흔적이 보이는 메디치가의 곡물 창고도 지금은 교회. 곳곳에 르네상스 당시의 예술 혼과 경제적 번영, 종교적 냄새가 그대로 남아있어 현대라는 시간을 잊고 그 속에 빠져든다.

피렌체 관광의 진수는 바로 책과 그림으로는 볼 수 없는 이 분위기에 취함이 아닐까 싶다. 성당이나 미술관 대부분 입장료가 있다.

바삐 걸음을 옮겨 메디치 가문의 사원들을 둘러본 후 그 일대 시장을 보기로 했다.

메디치가 사원의 성물실 중 브루넬리스키의 구(舊) 성물실이 산 로렌초 교회에 있고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신(新) 성물실은 교회 뒤 메디치가의 예배당에 있다. 시대와 양식을 달리하는 묘지 공간에 예술품들이 어울려 승화된 예술성과 성스러움을 더해준다.

특히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돌아보면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의 소박함에서는 가문의 융성을, 군주의 예배당에서 보이는 사치와 호화로움은 가문의 몰락을 말하는 것이니 재미있는 일이다.

메디치 가문의 사원도 사원이지만 이 일대는 피렌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을 끼고 있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시장의 중심은 역시 식료품 시장. 값싸고 맛있는 이 지역의 야채나 과일 등 긴 여름 해에 더구나 돌길을 걷는 일로 지친 여행자의 입맛을 살려줄 샐러드감과 다양한 향신료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식품 값은 비교적 저렴한 편. 원래 이태리 물가가 차이가 크다. 귀족 상대이고 유명 브랜드의 상품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가이고 서민 상대의 경우는 저렴하고. 가격 대비 상품의 질을 잘 판단해서 쇼핑해야 할 것이다.

길거리에 늘어놓은 가죽 공예소품들이 쉽게 마음을 끌었다. 통가죽으로 된 허리띠를 흥정하다 그만두었다. 다소 미안했는데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금은, 가죽, 세공과 패션 등으로 피렌체에서의 숙식은 어느 도시보다 편안했다. 크지 않지만 좋은 호텔이 많이 있고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많다.

점심때 간단히 무엇을 먹을까 망설이며 이집저집 기웃거리다 결국 한 식당에 들어가 스파게티를 주문했었다. 프랑스 요리의 원조를 자랑한다는 피렌체 음식이라더니 스파게티 하나에도 전채 요리와 와인을 곁들여주어 만족스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세트 메뉴였는데, 중앙시장이나 역 주변 노점에서 값싸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